예수님의 생애 연대기 (탄생에서 승천까지)
탄생과 어린 시절
1.
예수님의 탄생 –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님은 예언된 대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천사들이 밤에 목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고, 
목자들은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했습니다.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1:18–25; 누가복음 2:1–20.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 장면이 직접 나오지 않습니다.)
b.
기타 신약: 바울은 “때가 찼을 때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고 기록하여 예수님의 탄생을 언급합니다 
(갈라디아서 4:4 참조). 또한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하여 성육신을 설명합니다 (요한복음 1:14).
c.
구약 예언: 예수님의 탄생은 여러 구약 예언의 성취입니다. 이사야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예언했고 (이사야 7:14), 미가는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나올 것을 예언하였는데 (미가 5:2), 예수님께서 바로 그 예언대로 
동정녀에게서 베들레헴에 나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2.
성전 봉헌 – 예수님 탄생 후 마리아와 요셉은 율법의 규례대로 아기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하였습니다. 그때 경건한 시므온은 아기를 안고 
메시아의 오심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만민 앞에 예비하신 구원”으로 
선언했습니다. 또 선지자 안나도 아기의 도래를 감사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 이방인들까지 비추실 것을 보여줍니다.
a.
관련 복음서: 누가복음 2:22–38 (아기 예수의 성전 봉헌과 시므온, 
안나의 축복 장면).
b.
기타 신약: 해당 사건에 대한 다른 신약 언급은 직접적으로 없지만, 
예수님이 “율법 아래 나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려 하셨다”는 
갈라디아서 4:4–5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유아기에 율법을 따라 성전에 
드려진 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c.
구약 예언/예표: 시므온은 예수님을 가리켜 “이방을 비추는 빛”이라고 
찬양하였는데 이는 이사야 52:10 등에서 예언된, 하나님이 모든 
민족에게 구원을 베푸실 것이라는 약속과 통합니다. 또한 첫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규례(출애굽기 13:2, 13:12)를 예수님의 부모가 
준행함으로써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소유로 구별되었습니다.
3.
동방 박사들의 방문 – 예수님 탄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동방에서 
박사들(현인들)이 하늘의 특별한 별을 따라 예루살렘에 왔다가 베들레헴에 
이르러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의 예물을 드렸습니다. 헤롯 
왕은 새 왕의 탄생 소식을 듣고 불안을 느꼈고, 박사들이 돌아가지 않자 
분노하였습니다.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2:1–12 (동방 박사들이 별을 따라 와서 유아 
예수를 경배함). 누가복음에는 박사들의 이야기가 없고, 
마가/요한복음에는 유년기 기록이 없습니다.
b.
기타 신약: 신약의 다른 책에서는 동방 박사 이야기를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이 사건은 이방인들이 예수님께 경배한 최초의 예 중 하나로, 
이후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행전과 서신서의 흐름을 
예표합니다.
c.
구약 예언: 이 사건은 이사야 60:6의 예언을 상기시킵니다. “스바의 
무리들이 다 금과 유향을 가져와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라”는 
말씀처럼, 동방 박사들은 금과 유향 등의 예물을 가지고 와서 예수께 
드림으로써 이방 나라들이 메시아께 경배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민수기 24:17의 “야곱에게서 한 별이 나오고 이스라엘에게서 한 홀이 
일어난다”는 예언은 베들레헴 위에 나타난 별로 어느 정도 
성취되었다고 여겨집니다.
4.
애굽 피신 – 동방 박사들에게서 새 왕의 탄생 소식을 들은 헤롯 왕이 아기를 
해치려 하자, 주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급히 아기와 마리아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성가족은 한밤중에 애굽으로 
도피하여 헤롯의 위협을 피했고, 헤롯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2:13–15 (천사의 지시로 예수의 가족이 
애굽으로 피신함). 누가복음 등 다른 복음서에는 이 내용이 없습니다.
b.
기타 신약: 이 사건 자체를 다른 신약 저자들은 언급하지 않지만, 
마태복음 기자가 전한 대로 애굽 체류 후 귀환은 예수님의 생애가 
모세의 생애와 유사한 패턴(박해를 피해 애굽으로 갔다 옴)을 보인다는 
점에서 히브리서 3:2–6 등에서 예수님을 모세와 비교하는 대목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c.
구약 예언: “내가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다”는 호세아 11:1의 
말씀은 본래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가리키지만, 신약 마태복음은 이것이 
예수님에게도 적용된다고 밝혔습니다. 예수님이 어린 시절 애굽에 
피신했다가 나오신 것은 이 말씀을 성취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5.
헤롯에 의한 유아 학살 – 헤롯 왕은 박사들에게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속임수를 써 아기 예수를 찾아 죽이려 했으나, 
박사들이 하나님의 지시로 헤롯에게 돌아가지 않자 격분하였습니다. 이에 
헤롯은 베들레헴과 그 주변의 두 살 이하 남자아이들을 모조리 살해하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가정에 비통한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2:16–18 (헤롯이 베들레헴의 유아들을 
학살하고, 라마에서 통곡하는 예언 인용).
b.
기타 신약: 이 비극적 사건은 다른 복음서나 신약서신에 직접 나오지 
않지만, 예수님의 탄생 직후부터 세상 권력이 메시아를 위협한 
사실로서, 요한계시록 12장에 묘사된 “용이 아이를 삼키려 한다”는 
환상과 평행을 이루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c.
구약 예언: 이 사건은 예레미야 31:15의 예언을 상기시킵니다 –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자기 자식 때문에 
울었다”. 마태복음은 바로 이 구절을 인용하여 (마 2:18) 베들레헴에서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의 울음이 예언의 성취라고 전합니다.
6.
나사렛 귀환과 성장 – 헤롯이 죽은 후, 주의 천사는 다시 요셉에게 나타나 
안전함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에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이스라엘로 돌아와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에 정착하였고, 예수님은 그곳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시절 목수 요셉의 아들로 순종하며 자라셨고,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였습니다 (눅 2:40).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2:19–23 (예수의 가족이 애굽에서 돌아와 
나사렛에 정착함); 누가복음 2:39–40 (아기가 자라며 강건하여짐).
b.
기타 신약: 예수께서 “나사렛 사람”이라 불리신 것은 사도행전 등에서 
그 별칭으로 여러 번 나타납니다(예: 행 22:8).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증언할 때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는데(행 4:10), 이는 그가 
자라난 고향으로 식별된 것입니다.
c.
구약 예언: 마태복음은 “나사렛 사람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하신 
선지자들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기록합니다 (마 2:23). 비록 
구약에 “그가 나사렛이라 불릴 것이다”라는 정확한 구절은 없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 말씀이 구약 선지자들이 예고한 메시아의 비천함과 
멸시받음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특히 이사야 11:1의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네쳇, 어근이 ‘나사렛’과 유사)이 나리라”는 예언이나, 이사야 
53:3의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다”는 말씀이 예수님의 
나사렛 출신이라는 낮은 신분과 연결되어 성취된 것으로 해석됩니다.
7.
소년기 (성전에서의 예수) – 예수님께서 약 12세 되셨을 때, 가족과 함께 
해마다 그랬듯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유월절을 지키셨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부모는 갈릴리로 돌아가다 예수님이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예루살렘을 
찾아왔는데,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 가운데 앉아 묻기도 답하기도 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였습니다. 듣는 이들은 어린 예수의 지혜와 지식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마리아가 염려한 마음으로 말씀드리자, 예수님은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 (눅 2:49). 이후 
예수님은 부모님께 순종하며 나사렛으로 내려가 자라나셨습니다.
a.
관련 복음서: 누가복음 2:41–52 (12세 예수님의 성전 이야기).
b.
기타 신약: 이 사건은 다른 복음서나 서신에 직접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지혜와 성숙함은 훗날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람이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어떻게 이런 지혜와 권능이 있느냐” (마 
13:54-55)고 의아해하게 할 만큼 탁월하였는데, 이는 누가복음 
2:52의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는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c.
구약 예언/연결: 예수님이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을 놀라게 한 일은 
특별한 직접 예언의 성취라기보다는, 어릴 적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였던 사무엘 (사무엘상 2:26)이나 지혜를 구하여 얻은 
솔로몬(열왕기상 3:12) 등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지혜와 지식이 충만하셨으며, 이는 
장차 그분이 “더 큰 솔로몬”으로서 지혜의 왕이실 것을 예고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공생애 시작 (준비와 초기 사역)
1.
세례 요한의 준비 사역 –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그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이 먼저 나타났습니다. 세례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유대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외치며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준비시켰고, 많은 무리가 요단강으로 나와와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은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며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발 끈 풀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마 
3:11). 또한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언하며 메시아의 오심을 알렸습니다 (요 1:29).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3:1–6, 11; 마가복음 1:1–8; 누가복음 3:2–16; 
요한복음 1:19–28. (네 복음서 모두 세례 요한의 사역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b.
기타 신약: 세례 요한은 신약 다른 부분에도 종종 언급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높이셨고(마 11:11), 사도들은 요한의 세례로부터 시작된 예수님의 
사역을 전했습니다 (행 1:22, 10:37 참조). 또한 에베소에서 바울은 
요한의 세례만 알던 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성령세례를 베풀기도 
했습니다 (행 19:1–7).
c.
구약 예언: 세례 요한의 등장은 구약의 분명한 예언 성취입니다. 
이사야 40:3에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복음서들은 요한이 바로 그 
“광야의 소리”라고 증언합니다. 또한 말라기 3:1은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라고 했고, 말라기 
4:5에서는 엘리야와 같은 사람이 올 것을 예고했는데, 예수님은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던 엘리야(의 역할을 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1:10, 14). 이처럼 세례 요한은 예언된 대로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선지자였습니다.
2.
예수님의 세례 – 서른 살쯤 되신 예수님께서 요단강에 나아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처음에 요한은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텐데 어떻게 제가 세례를 줍니까”라며 망설였으나, 예수님은 “지금은 그렇게 
하게 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하시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마 3:14-15). 예수님이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 위에 내려왔으며,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공적인 메시아적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신적 인정과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3:13–17; 마가복음 1:9–11; 누가복음 3:21–22; 
요한복음 1:29–34. (네 복음서 모두 이 장면을 기록합니다.)
b.
기타 신약: 사도행전 10:37–38에서 베드로는 “요한이 세례를 전파한 
후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일”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께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다”고 증언하는데, 이는 
예수님의 세례 때 일어난 일을 가리킵니다. 또한 히브리서 1:9는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너에게 부어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다”고 하는데,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으심으로 
메시아(기름부음 받은 자)가 되셨음을 시사합니다.
c.
구약 예언: 예수님의 세례 장면에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함께 
나타나십니다. 하늘의 음성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자다”라는 선언은 시편 2:7의 메시아 왕에 대한 선포(“너는 내 
아들이라”)와 이사야 42:1의 종의 노래(“내가 붙드는 나의 종... 그에게 
나의 심령이 기뻐함이라”)를 연상시키며 성취합니다. 또한 이사야 
11:2의 “여호와의 영이 그 위에 임하시리니”라는 예언대로 성령이 
임하였고, 이사야 61:1에서 메시아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라고 말하는데, 바로 이 세례 
사건이 메시아의 기름부음으로서 그 예언을 이루었습니다.
3.
광야에서의 시험 –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직후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가 
40일 동안 금식하며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는 세 가지 큰 시험으로 
예수님을 유혹하였습니다: “이 돌들로 떡이 되게 하라”며 육신의 욕구를 
시험했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하며 교만과 명성을 시험했으며, 또 
세상의 모든 영광을 보여주며 절하면 다 주겠다고 하며 우상숭배를 
부추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들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응답하심으로 모든 시험을 
이겨내셨습니다 (마 4:4, 7, 10). 그리하여 예수님은 한 번도 죄에 빠지지 
않으시고 시험을 끝내셨고, 마귀는 물러갔으며 천사들이 나아와 
수종들었습니다 (마 4:11).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4:1–11; 마가복음 1:12–13; 누가복음 4:1–13. 
(요한복음에는 이 기록이 없습니다.)
b.
기타 신약: 히브리서 4:15은 예수님의 이 시험의 의의를 잘 
요약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공감하지 
못하는 분이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신 분”이라고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인간과 똑같이 시험을 
겪으셨기에 우리의 유혹과 연약함을 깊이 이해하시지만, 한편으로는 단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으신 완전한 거룩함을 입증하셨음을 신약은 
증언합니다.
c.
구약 예언/배경: 예수님의 40일 광야 시험은 구약의 여러 모티프와 
연결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40년 시험받은 
역사(신명기 8:2)와 대비되며, 첫 사람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시험받아 
실패한 것과 달리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승리하신 사건입니다. 
특히 예수님이 인용하신 말씀들은 모두 신명기에 기록된 것으로(신 8:3, 
6:16, 6:13),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지키지 못했던 하나님의 명령을 
예수님은 충실히 지키셨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시험 중 마귀가 인용한 
시편 91편의 약속을 오용하였으나(시 91:11–12), 예수님은 말씀을 
온전히 분별하여 순종하심으로 참된 메시아로서의 순례 길을 
가셨습니다.
4.
첫 제자들과의 만남 – 시험 후 요단강 부근에 계시던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증언을 듣고 따라온 안드레와 또 다른 제자(요한으로 추정)를 처음으로 
만나셨습니다. 안드레는 자기 형제 시몬에게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하여 시몬을 예수께 데려왔고, 예수님은 시몬에게 “장차 게바(베드로, 
반석)가 될 것”이라고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튿날 예수님은 갈릴리를 
향하시며 빌립을 부르셨고, 빌립은 친구 나다나엘에게 예수를 소개했습니다. 
나다나엘이 처음에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며 
의심하였으나, 예수님께서 그의 속마음과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던 일을 
알아맞히시자 크게 놀라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신앙 고백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앞으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더 큰 일을 예고하셨습니다 (요 1:50–51). 이 만남들을 통해 
예수님의 첫 제자 그룹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a.
관련 복음서: 요한복음 1:35–51 (안드레,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이 
예수님과 만남).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은 이들의 초기 
만남보다 나중에 갈릴리에서 베드로 등이 부르심 받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b.
기타 신약: 훗날 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되어 사도적 
사명을 감당합니다. 신약의 사도행전 1:13 등에는 이들의 이름이 사도 
명단으로 나오며, 계시록 21:14에서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새 예루살렘 성벽 기초석에 기록되어 있음을 언급합니다.
c.
구약 연결: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언급하신 “하늘의 사자들이 
오르내리는 것”은 창세기 28:12에서 야곱이 본 사다리 환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이 하늘과 땅을 잇는 
참된 연결 통로(중보자)가 되심을 암시하신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는 
구약의 꿈과 환상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는 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5.
가나의 혼인잔치 기적 – 그 후 예수님은 갈릴리로 돌아가시어 제3일에 
갈릴리 가나에서 열린 혼인잔치에 참석하셨습니다. 잔치 도중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이를 예수께 아뢰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인들에게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게 하신 뒤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고, 물은 최고의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첫 번째 표적을 행하사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으며, 제자들은 예수님을 더욱 믿게 되었습니다.
a.
관련 복음서: 요한복음 2:1–11 (물이 포도주로 변한 첫 표적). [이 
기적 이야기는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b.
기타 신약: 다른 신약 책들은 이 사건을 직접 다루지 않지만, 
요한복음 저자는 이것을 예수님의 첫 표적이라 명시하며 (요 2:11)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낸 사건으로 강조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를 
믿었다는 언급은 요한복음의 핵심 주제인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음”을 예고합니다 (요 20:31).
c.
구약 연결: 구약에서는 풍성한 새 포도주가 메시아 시대의 축복을 
상징합니다 (예: 아모스 9:13–14). 가나의 기적은 “포도주가 기쁨으로 
넘치는 시대”의 도래를 예시하며, 예수님이 그런 메시아적 풍요와 
기쁨을 가져오실 분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기적은 모세가 첫 
표적으로 물을 피로 바꾼 것과 대비되어,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심으로 은혜와 기쁨의 새 시대를 여는 더 크신 분임을 암시합니다.
6.
예루살렘에서 성전 정화 –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성전에 들어가 보니 장사꾼들이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환전상들이 앉아서 돈을 바꾸는 등 성전 뜰이 시장터처럼 
어지럽게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들을 성전에서 내쫓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둘러엎으시며,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 “주의 전을 위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시편 69:9) 한 
성경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유대인들이 무슨 표적을 보이느냐 묻자, 예수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답하셨고, 제자들은 나중에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그 말씀이 자신의 몸된 성전을 가리킨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 2:19–22).
a.
관련 복음서: 요한복음 2:13–22 (예수님의 첫 성전 정화 사건). 
[마태복음 21장 등 공관복음에도 성전 청결 사건이 나오나, 그것은 
예수 생애 말기에 일어난 두 번째 정화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b.
기타 신약: 예수님이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칭하신 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낸 장면으로 후대에 회자됩니다. 
사도들은 성전 대신 예수님의 몸이 참 성전임을 선포했고, 초대교회는 
믿는 이들이 성령의 전이 되었음을 가르쳤습니다 (고린도전서 3:16). 
또한 이때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흘 만에 성전을 일으키리라”는 언급은 
마태복음 26:61 등에서 예수님에 대한 오해를 낳아 재판 때 
증언으로도 사용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킨 
예언적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c.
구약 예언: 예수님의 행동은 시편 69:9의 예언을 성취한 것으로 
제자들이 이해했습니다 –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나이다”
또한 예수님이 상인들을 꾸짖으며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불릴 것인데 너희는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신 말씀은 이사야 
56:7과 예레미야 7:11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으로, 성전의 거룩성을 
회복하려는 메시아의 열심을 보여줍니다. 말라기 3:1의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리니”라는 구절도 이 사건에 비추어 볼 때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은 갑작스런 권위로 성전을 정화하심으로, 
자신이 오실 주로서 성전을 돌보는 분임을 나타내셨습니다.
7.
니고데모와의 대화 – 바리새인 중 한 사람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이런 
표적을 행할 수 없습니다”라고 공손히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누구든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니고데모가 거듭남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다 큰 사람이 
어떻게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습니까?” 묻자,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설명하시며 영적 
새 탄생의 필요를 가르치셨습니다 (요 3:3–5). 또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장차 자신이 십자가에 달릴 것을 
예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핵심인 요한복음 3:16의 말씀, 곧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구원의 복음을 니고데모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유대 종교지도자에게도 거듭남과 믿음을 
통한 구원의 도리를 밝히셨습니다.
a.
관련 복음서: 요한복음 3:1–21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
b.
기타 신약: 니고데모는 요한복음에 세 차례 등장합니다(요 3장, 7장, 
19장). 요한복음 7:50–52에서는 니고데모가 공회 중에 예수님을 
변호하는 발언을 잠시 하지만 큰 영향은 못 미칩니다. 훗날 요한복음 
19:39에서는 그가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가지고 장례에 참여하는데, 이는 니고데모가 결국 은밀하나마 예수께 
믿음을 갖게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서신서에는 니고데모 언급이 없으나,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원받았다”는 디도서 3:5의 
가르침 등은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가르친 거듭남 교리를 잘 
요약합니다.
c.
구약 예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언급하신 “모세가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는 말씀은 민수기 21:8–9의 사건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 놋뱀을 장대 위에 
달아 올리자, 그것을 쳐다본 자마다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예표를 
들어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곧 “누구든지 인자가 
들린 것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요한복음 3:14–15의 말씀은 놋뱀 
사건의 성취로서, 구약의 구원이 믿음을 통해 주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또한 2사무엘 7:14에 나오는 “인자”와 이사야 52:13–53:12에 
예언된 고난받는 종의 승영(들려 높아짐)을 떠올리게 하며, 예수님 
안에서 구약의 구원 모형들이 완성되었음을 나타냅니다.
8.
세례 요한의 최후 (투옥과 순교) –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화되던 즈음, 
예수를 앞서 준비시켰던 세례 요한은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에게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요한이 헤롯에게 그의 죄를 책망했기 
때문입니다. 헤롯은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하여 불의한 결혼을 
하였는데, 요한이 “임금님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습니다”라고 꾸짖자 
헤롯은 노하여 요한을 체포했습니다 (막 6:17–18). 요한은 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기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확인하려 했고, 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고치시며 
“맹인이 보고 앉은뱅이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고 귀먹은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소식을 전하게 
하심으로 자신의 메시아 되심을 간접적으로 확증해주셨습니다 (마 11:2–5). 
그러나 옥 밖으로 나오지 못한 요한은 결국 헤롯의 생일 잔치 때 비극적인 
최후를 맞습니다. 헤롯의 의붓딸 살로메의 춤에 홀린 헤롯이 소원대로 상을 
주겠다고 맹세하자, 그녀는 어머니 헤로디아의 사주로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헤롯은 마음이 괴로웠지만 맹세와 
참석자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요한을 처형하게 하였습니다 (마 14:6–11). 
이렇게 요한은 순교로 생애를 마감했고, 그의 제자들이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지냈습니다.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14:3–12; 마가복음 6:17–29 (세례 요한의 
투옥과 순교 경위). 누가복음 3:19–20에도 요한이 헤롯에게 옥에 갇힌 
사실이 짤막하게 언급됩니다.
b.
기타 신약: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해서는 복음서 외에 다른 신약 
책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이 죽은 후 
갈릴리 사역을 더 적극적으로 이어가셨고 (마 4:12–17),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할 때 사람들에게 “요한은 선지자였으나 
예수님을 믿었다”는 취지의 설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행 13:24–25). 
또한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혹시 죽은 요한이 살아난 
것이냐”며 두려워하기도 했습니다 (막 6:14–16).
c.
구약 연결: 세례 요한은 마지막 구약 시대의 선지자 같은 인물로, 
신약 시대를 열며 사라졌습니다. 그의 운명은 예레미야나 엘리야 등 
의를 위해 핍박받은 선지자들의 전통을 잇습니다. 또한 요한의 질문에 
예수님이 대답하신 내용은 이사야 35:5–6, 61:1 등의 메시아 표적들을 
나열한 것으로, 예수님이야말로 요한이 예비한 오실 그 분임을 
확증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요한의 순교로 구약적 예언자 시대가 
종결되고,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은혜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우리는 
봅니다.
갈릴리 사역 (북부 지역에서의 사역)
1.
사마리아 여인과 수가 성읍 복음화 –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힌 후 
예수님께서는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면서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셨습니다. 
사마리아의 수가라 하는 동네 우물가에서 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예수님은 물을 길으러 나온 그 여인에게 “나에게 물 좀 
달라”고 하시며 접근하셨고, 이어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대화 중에 예수님께서 그 
여인의 과거(남편 다섯이 있었던 사생활)를 알아맞히시자, 놀란 여인은 
예언자로 여기며 메시아에 대해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메시아)임을 그에게 밝히셨습니다. 이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내가 행한 모든 일을 알아맞히신 분이 계시니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겠느냐” 하고 증언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수가 
성 사람들이 나와와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게 되었고, 예수님은 이틀을 거기에 
머무르시며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라고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요 4:42).
a.
관련 복음서: 요한복음 4:4–42 (수가성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 [다른 복음서에는 이 내용이 없습니다.]
b.
기타 신약: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이 유대인만 아니라 사마리아인과 
이방인에게도 향하고 있음은 사도행전에서 본격화됩니다. 특히 
사도행전 8:5–17을 보면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많은 사람이 영접하고, 사도들도 내려가서 성령 
받게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는 수가성 사건에서의 예수님의 사역이 
훗날 사마리아 복음화의 씨앗이 되었음을 방불케 합니다.
c.
구약 연결: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분열은 구약 역사에 뿌리를 
둡니다(북이스라엘의 혼합민족 배경). 그러나 예수님은 이 장벽을 
허무시고 사마리아에도 구원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는 구약의 약속 
– “내가 만민 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리라”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호세아 2:23 등), 이사야 49:6의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이르러라”는 
말씀의 성취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한 생수를 약속하신 것은 예레미야 2:13의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 이미지와 연결되고, 요엘 2:28의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라는 예언이 장차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성령이 임할 것을 
내포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2.
갈릴리로 돌아옴 (빛이 임한 갈릴리) –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지나 
갈릴리로 돌아오셨습니다. 이는 세례 요한의 투옥 이후였습니다. 갈릴리에 
오신 예수님은 비로소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시며 하나님의 나라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갈릴리 호숫가의 가버나움에 거주지를 정하시고 활동 거점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일은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 해변 길과 요단강 건너편, 
이방의 갈릴리가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는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 시작을 
전하며 이사야 9:1–2의 말씀을 인용하여, 갈릴리 지역에 메시아의 빛이 
비췄음을 강조합니다 (마 4:13–17). 그때부터 많은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을 보고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4:12–17; 마가복음 1:14–15; 누가복음 4:14–15; 
요한복음 4:43–45. (모두 예수님의 갈릴리 복귀와 초기 전파를 언급)
b.
기타 신약: 갈릴리는 예수님의 주된 사역 무대였고, 사도들 대부분도 
갈릴리 출신입니다. 사도행전 10:37에서도 베드로가 “요한의 세례 이후 
갈릴리에서 시작된 일”로 예수님의 사역을 소개합니다. 또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 하늘을 쳐다보느냐”라는 천사의 말(행 1:11)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사람으로 불릴 만큼 갈릴리 지역과 
밀접했음을 보여줍니다.
c.
구약 예언: 예수님의 갈릴리 활동은 이사야 9:1–2의 분명한 
성취입니다. 이 구절은 메시아의 빛이 갈릴리 지방에 임할 것을 
노래하는데, 마태복음 4장에서 그대로 인용되었습니다. 또한 갈릴리는 
“이방의 갈릴리”로 불릴 정도로 혼합 지역이었는데, 메시아가 그곳을 
주 활동지로 삼으심으로써 장차 이방인들까지 포함하는 구원의 빛을 
암시했습니다. 시편 107:10 등에서 언급된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춘다는 시적 표현도 예수님의 사역으로 
현실화되었습니다.
3.
나사렛 회당에서의 메시아 선언 – 예수님은 갈릴리에 돌아오신 후 고향 
나사렛을 방문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셔서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니, 이사야서 두루마리가 예수님께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61장의 한 부분을 찾아 소리 내어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로 시작하는 메시야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덮어 
맡은 자에게 주신 후, 모든 회중이 주목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사람들은 처음엔 그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다가, 곧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하며 
수근거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에 이방인들이 은혜 입은 
이야기를 들어 고향 사람들의 불신을 지적하시자, 회당에 있던 자들이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끌고 마을 밖 낭떠러지까지 몰아가 밀쳐 
떨어뜨리려 했으나,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서 유유히 빠져나오셔서 
떠나셨습니다 (눅 4:16–30). 이로써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다”는 말씀을 직접 
체험하셨습니다.
a.
관련 복음서: 누가복음 4:16–30 (나사렛 회당 사건). 마태복음 
13:54–58과 마가복음 6:1–6에도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방문과 
배척당한 이야기가 있으나, 누가복음의 기록이 메시아 선언을 포함하여 
가장 상세합니다.
b.
기타 신약: 요한복음 1:46에서 나다나엘의 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는 당시 나사렛의 영적 무명함을 보여줍니다. 이 
말처럼 예수님은 고향에서는 믿음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는데, 요한복음 
4:44도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언급합니다. 이후 
초대교회에서 “나사렛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멸시받는 칭호가 되기도 
했지만(행 24:5), 사도들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히 증언하였습니다.
c.
구약 예언: 예수님이 회당에서 읽으신 이사야 61:1–2는 메시아에 대한 
대표적 예언으로, 예수님은 “오늘 이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선포하심으로 자신이 바로 그 기름부음 받은 이임을 밝히셨습니다. 
이는 구약 예언의 직접적 성취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예로 드신 사렙다 과부와 수리아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는 
(열왕기상 17장, 열왕기하 5장) 이방인에게 베풀어진 은혜를 
보여주는데, 이는 구약부터 이미 믿음 있는 이방인도 하나님이 
구원하셨음을 상기시켜 나사렛 사람들의 불신을 책망한 것입니다. 결국 
이사야 53:3의 “멸시를 받아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다”는 
예언처럼,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메시아를 배척함으로써 그 말씀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4.
가버나움에서 네 제자 부르심 –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천국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고, 호숫가에 있던 어부들을 제자로 불러 함께 
사역하도록 하셨습니다. 갈릴리 호수(게네사렛 호수) 언덕에서 말씀을 
전하시던 예수님은 어부 시몬 베드로의 배를 빌려 호수에 조금 띄운 채 
가르치신 후,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이르셨습니다. 베드로가 밤새 한 마리도 못 잡았으나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했더니 그물에 고기가 가득 차 찢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놀란 베드로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하며 엎드리자, 예수님은 “두려워 
말라. 이제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5:1–11). 
이리하여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등 네 사람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부르셨고, 그들은 즉시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마 4:18–22, 막 1:16–20).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4:18–22; 마가복음 1:16–20; 누가복음 5:1–11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의 소명 장면). 요한복음에는 이 사건 
대신 앞서 제자들이 예수께 온 이야기(요 1장)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b.
기타 신약: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이후 열두 사도 가운데 
핵심으로 활동합니다. 사도행전 2–5장 등 초대교회의 기록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주도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2:9에서 바울은 베드로(게바)와 요한, 야고보를 “교회의 
기둥”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c.
구약 연결: 예레미야 16:16에는 “많은 어부를 보내어 그들을 낚게 
하겠다”는 표현이 나와, 하나님이 회복 시에 사람을 모으실 것을 
은유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다는 
것은 바로 영혼을 구원으로 건져내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 
이미지는 에스겔 47:10의 “어부들이 큰 물고기를 잡는다”는 새 시대 
비전과도 어우러져, 예수님이 가져올 구원의 풍성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누가복음에 기록된 풍어 기적은 시편 107:23–30에서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얻는 이야기와도 통하며, 
제자들이 앞으로 고난 속에서도 주의 능력으로 영혼을 건지는 자들이 
될 것을 암시합니다.
5.
가버나움에서의 권능 (첫 기적들과 치유) –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많은 
권능의 표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치며 예수님을 대적하자, 예수님께서 한 
말씀으로 귀신을 꾸짖어 내쫓으셨습니다. 그 사람은 깨끗하게 되고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이 “권위있는 새 교훈이로다! 이가 말씀으로 귀신들을 명하니 
순종하는도다” 하며 놀랐습니다 (막 1:21–28, 눅 4:33–37). 또한 시몬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열이 즉시 떠나고 수종들었습니다 (막 1:29–31, 눅 4:38–39). 그 날 해 질 
무렵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각종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왔고,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안수하여 병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처럼 가버나움에서는 눈먼 자, 못 걷는 자, 중풍병자, 문둥병자 등 많은 
치유 기적이 일어났고, 예수님의 명성이 사방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모든 앓는 자를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그가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고 병을 짊어졌다’ 함을 이루려 
함이라”고 기록하여 (마 8:16–17) 이 치유 사역이 구약의 예언을 성취한 
것임을 밝혔습니다.
a.
관련 복음서: 마가복음 1:21–34; 누가복음 4:31–41; 마태복음 8:14–17 
등 (가버나움에서 귀신 축출과 장모 치유, 많은 병자 치유 사건).
b.
기타 신약: 베드로는 사도행전 10:38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가리켜 
“나사렛 예수께서…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고 증언합니다. 복음서의 이런 치유 기사들은 
초대교회에서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전하는 중요한 간증이 되었고, 
후일 야고보서 5:14–16의 병자 기도 권면 등 교회의 치유 사역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c.
구약 예언: 예수님의 온갖 질병 치유는 이사야 53:4의 “그가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짊어졌다”는 말씀이 문자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마태복음이 설명합니다. 또한 이사야 35:5–6에는 
“그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고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는 노래하리라”고 예언되었는데, 
예수님의 사역에서 실제로 소경이 눈을 뜨고 못 걷던 자가 일어나는 등 
이러한 표적들이 다수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셔서 
육체와 영혼을 온전히 회복시키는 구원을 가져오셨음을 나타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창세기 3:15에 언급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원시 복음의 성취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 곧 예수님께서 오셔서 사탄의 세력을 결박하시고 
(요일 3:8)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6.
갈릴리 전도 여행과 산상설교 –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갈릴리의 여러 도시와 마을로 전도 여행을 다니셨습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한편 예수님의 
명성이 퍼지자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시기와 비판을 시작했습니다.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며 이삭을 손으로 잘라 비벼 먹자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한다”고 정죄했고, 예수님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포하시며 그들의 잘못된 엄격주의를 책망하셨습니다 (마 
12:1–8). 또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자 바리새인들이 이에 
분노하여 예수를 죽일 것을 의논하기까지 했습니다 (막 3:1–6). 그러나 
예수님은 계속해서 선을 행하시고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이러한 중에도 
예수님의 제자 무리는 점점 늘어났고, 예수님은 밤새 기도하신 후 열두 
제자를 공식적으로 사도로 임명하셨습니다. 그들은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빌립, 바돌로매(나다나엘), 도마, 마태(레위),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또는 유다), 가나안인 시몬, 가룟 유다 등 열둘이었습니다 (막 
3:13–19).
이어 예수님은 갈릴리 호숫가 언덕 평지에서 수많은 무리와 제자들에게 
유명한 산상설교를 베푸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는 팔복으로 시작하여 (마 5:3 이하)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대하는 법, 기도와 금식, 재물과 염려 등에 대한 교훈을 펼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좁은 길로 들어가라”“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등 수많은 주옥같은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이 설교에서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하시며 (마 5:17) 모세 율법의 참된 정신을 
심화시켜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가르치심에 권위가 있음을 느꼈고 
놀랐습니다.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4:23–25 (갈릴리 전도 여행); 마가복음 
1:35–39; 누가복음 4:43–44. 제자 임명은 누가복음 6:12–16, 마가복음 
3:13–19, 마태복음 10:1–4. 산상설교는 주로 마태복음 5–7장, 누가복음 
6:17–49에 병행 부분이 있습니다.
b.
기타 신약: 예수님의 산상설교 내용은 신약 서신서 전반에 걸쳐 
반복되고 인용됩니다. 예컨대 야고보서에는 산상설교의 정신이 많이 
반영되어 있고, 로마서 12장 등의 윤리 교훈에서도 예수님의 말씀 
소리가 들립니다. 또한 열두 사도의 임명은 사도행전 1:13 등에 
제자들의 이름으로 확인되며, 요한계시록 21:14에서는 열두 사도가 
어린양의 열두 기초석으로 상징됩니다.
c.
구약 예언: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자를 고치는 모습은 
이사야 61:1–2의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한다는 메시아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님은 모세가 율법을 받은 산에서와 
같이 산에서 가르치셨는데, 이는 신명기 18:15의 “너희 가운데 선지자 
하나를 세우리니 모세와 같을 것”이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 
예수님은 새로운 권위로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새 모세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팔복에서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 
하신 말씀(마 5:5)은 시편 37:11의 언약을 인용한 것으로서, 예수님이 
구약의 약속들을 새 시대에 확언하신 예라 할 수 있습니다.
7.
풍랑을 잔잔케 하심 –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실 때의 일입니다. 예수님이 배 안에서 주무시는 사이, 큰 
광풍이 일어나 물결이 배를 뒤덮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이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하고 깨우자,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바람과 바다가 곧 잔잔하게” 
되어 큰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고 책망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 놀라며 
서로 “이분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말했습니다. 이 
기적을 통해 제자들은 예수님의 창조주적인 권세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8:23–27; 마가복음 4:35–41; 누가복음 8:22–25. 
(세 복음서에 모두 기록됨)
b.
기타 신약: 풍랑을 잔잔케 한 사건 자체는 복음서 외 신약에서 
언급되지 않지만, 예수님의 이러한 권능은 제자들이 나중에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이해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시편 89:9에 
“주께서 바다의 넘치는 것을 다스리신다”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 
그것을 행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c.
구약 예언/연결: 바다와 바람을 꾸짖어 잠잠케 하신 권능은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만이 행하시는 일로 묘사됩니다. 시편 107:29에 
“여호와께서 광풍을 고요하게 하시니 물결들도 잔잔하였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친히 이 일을 행하심으로 자신이 여호와와 하나되심을 
드러내신 셈입니다. 또한 요나서의 풍랑 이야기는 예수님의 행적과 
대조를 이루어 흥미롭습니다. 요나는 풍랑 중에 배 밑층에서 잠들었고, 
결국 바다에 던져져야 했으나, 예수님은 풍랑 가운데 주무시다가 직접 
자연을 다스리심으로 더 큰 요나로서의 면모를 보이셨습니다 (마 
12:41 참고).
8.
거라사의 귀신 들린 자 치유 – 갈릴리 동편 이방 지역인 거라사 지방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며 심히 사나운 귀신 들린 남자를 
만나셨습니다. 그는 “내 이름은 군대(Legion)라” 할 정도로 많은 악령에 
사로잡혀 있었고, 쇠사슬도 끊을 만큼 이성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이 
가까이 가시니 귀신들이 그를 넘어뜨리며 크게 부르짖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귀신들은 
예수님께 자기들을 심연으로 보내지 말아달라고 간청했고, 마침 근처 
산기슭에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기에 귀신들이 돼지들에게 
들어가게 허락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예수님이 허락하시자 그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 돼지 떼로 들어갔고, 약 2,000마리 되는 돼지들이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몰싸하였습니다 (막 5:1–13). 귀신이 떠나간 그 사람은 
온전한 정신이 돌아와 예수님 발치에 앉았습니다. 거라사 사람들은 이 광경과 
재산 피해(돼지 떼의 손실)에 두려워져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실 때 귀신 쫓음 받은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청했으나, 
예수님은 “네 가족에게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하신 일을 알리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돌아가 데가볼리 지역에 두루 다니며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큰일을 전파하였고, 모든 사람이 놀랐습니다 (막 5:14–20).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8:28–34 (두 귀신들린 자 언급); 마가복음 
5:1–20; 누가복음 8:26–39. (마태는 귀신들린 자가 둘이었다고 기록, 
마가와 누가는 주요 인물 한 사람에 초점)
b.
기타 신약: 예수님의 귀신 축출 사역은 사복음서 곳곳에 나타나며, 
이는 하나님 나라의 임함과 사탄 나라의 패퇴를 보여주는 
표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1:20에서 “내가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이후에는 사도들이 직접 귀신을 
쫓아내는 기록은 많지 않지만, 복음이 전파될 때 점치는 귀신을 내쫓은 
사례(행 16:18)가 있고, 야고보서 4:7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등의 권면이 나와 믿음의 권세를 나타냅니다.
c.
구약 연결: 구약에는 직접적인 귀신 축출 이야기는 드물지만(다윗이 
수금으로 사울에게서 악령을 잠시 떠나게 한 것 정도), 메시아 시대에 
악한 영들이 물러갈 것이 예표되어 있습니다. 사무엘하 22:5–6 등에서 
“음부의 줄” “사망의 파도” 같은 표현이나, 스가랴 13:2 “내가 우상과 
더러운 영들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하리라”는 예언 등이 예수님의 
사역에서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창세기 3:15의 원복음은 예수님의 
귀신 축출과 악한 영들에 대한 승리에서 부분적으로 이루어졌고, 
최종적으로는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됩니다. 거라사인의 해방은 이 영적 
전쟁에서 그리스도의 승리를 미리 보여준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9.
야이로의 딸 소생과 혈루병 치유 – 예수님이 다시 갈릴리 쪽으로 돌아오시자 
많은 무리가 환영하며 모였습니다. 그중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의 간절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의 열두 살 된 외딸이 죽어가고 있으니 와서 
고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가실 새, 큰 무리가 밀치고 
따라갔습니다. 그 중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앓아온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여러 의사에게 재산을 다 써도 고치지 못하고 있던 차에, “내가 예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나으리라” 하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뒤에 가서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러자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아시고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물으셨습니다. 여인이 두려워 떨며 나와 엎드려 사실을 고백하자,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하며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막 5:25–34). 이때 사람들이 와서 야이로의 딸이 이미 죽었다고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베드로·야고보·요한만 데리고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이 통곡하는 가운데, 예수님은 “아이의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시니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탈리타 쿰(소녀야 일어나라)” 하시니 죽었던 소녀가 곧 
일어나 걸었습니다! 부모는 크게 놀라고 기뻐했으며, 예수님은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시고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셨습니다 
(막 5:35–43). 이처럼 예수님은 인간에게 가장 절망적인 문제인 죽음과 
불치의 병까지도 해결하시는 생명의 주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9:18–26; 마가복음 5:21–43; 누가복음 8:40–56. 
(세 복음서 모두 야이로 딸 사건과 중간에 혈루증 여인 사건을 함께 
전합니다)
b.
기타 신약: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믿음과 치유 이야기는 신약 서신에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구절은 복음서에 
여러 차례 반복되고 (마 9:22 등), 에베소서 2:8의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합니다. 또한 죽은 이의 
소생 사건들은 구약의 엘리야와 엘리사에게도 있었지만 (열왕기상 
17:22, 열왕기하 4:35), 예수님은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음을 수차례 
보이셨고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부활하심으로 죽음에 대한 승리를 
온전히 이루십니다.
c.
구약 예언/연결: 예수님의 죽은 자 살리심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줍니다. 시편 146:8–10은 “여호와께서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사랑하신다”고 하는데, 예수님이 그 역할을 하셨습니다. 
또한 이사야 35:6에 “절름발이가 사슴처럼 뛸 것”이라 하고, 심지어 
다니엘 12:2에는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 많은 사람이 깨어날 
것”이라 예언되었는데, 예수님은 지상 사역 중에도 그러한 생명의 
표적을 미리 보이셨습니다. 혈루증 여인의 경우 레위기 15:25 이하에 
따르면 부정하여 성전에 나아갈 수 없는 처지였지만, 예수님은 율법의 
저주를 뛰어넘어 그녀를 정결케 하시고 딸로 받아주셨습니다. 이는 
스가랴 8:23의 “옷자락을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노라”는 이방인의 고백과도 연결되어,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은 
여인의 믿음처럼 절박한 믿음으로 주님을 붙드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얻을 것을 보여줍니다.
10.
오병이어의 기적 – 예수님의 사역이 절정에 다다르자, 수천 명의 인파가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한적한 곳으로 
가서 잠시 쉬려 하셨으나, 5,000명이나 되는 남자 (여자와 아이들 제외)가 
예수님을 찾아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무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하루 
종일 천국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은 무리를 돌려보내 양식을 사 먹게 하자고 건의했으나,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당황하며, 한 아이가 가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잔디에 앉게 하시고, 그 적은 떡과 물고기를 손에 들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 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눠주게 하셨습니다. 놀랍게도 모든 
사람이 먹고도 배불렀으며, 남은 부스러기를 거두니 열두 바구니 가득 
찼습니다. 이 엄청난 기적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말하며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는 움직임까지 보였습니다 (요 
6:14–15). 예수님은 그러나 조용히 그곳을 떠나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14:13–21; 마가복음 6:30–44; 누가복음 
9:10–17; 요한복음 6:1–14. (네 복음서 모두 기록한 유일한 기적)
b.
기타 신약: 오병이어 이야기는 복음서에만 나오지만, 이 사건이 
전달하는 영적 메시지는 요한복음 6장에서 생명의 떡 교훈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내가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는다”고 선포하셨는데, 이는 이후 주의 만찬(성찬) 교리와 
연결되고, 고린도전서 10:16–17에서 “우리가 떡을 떼어 나누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라고 한 바울의 가르침과 맥이 닿습니다.
c.
구약 예표: 이 기적은 구약의 만나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내려 배불리 먹이신 것처럼 (출애굽기 
16장), 예수님은 빈 들에서 무리를 먹이셨습니다. 또한 열왕기하 
4:42–44에서 선지자 엘리사가 보리떡 20개로 100명을 먹이고도 남긴 
이야기가 있는데, 예수님의 기적은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메시아적 
권능의 표징이었습니다. 시편 132:15에 “내가 그 곳 식량에 풍족히 
복을 내리리라”는 말씀이나, 시편 23:1–5에서 양떼를 푸른 풀밭에 누여 
먹이시는 목자의 이미지도 이 사건에 그대로 구현되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의 
완성으로, 메시아께서 친히 자기 백성을 먹이시고 만족게 하신 
것입니다.
11.
물 위를 걸으심 – 오병이어 기적 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배에 태워 먼저 
갈릴리 호수 맞은편으로 보내셨고, 자신은 홀로 산에 올라 기도하셨습니다. 
밤이 깊어가는데, 배는 바람이 거스르므로 인해 호수 한가운데에서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새벽 4시쯤 (밤 사경쯤)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이 있는 배를 향해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 생각하여 두려워 소리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 말라”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주여, 
주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라 
하시니, 베드로도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께로 갔습니다. 그러나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는 순간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여 “주여 구원하소서!” 
외쳤고,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으시며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함께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치고,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마 14:22–33, 막 6:45–52, 요 6:16–21).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14:22–33; 마가복음 6:45–52; 요한복음 
6:16–21. (누가복음에는 없음.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 장면은 
마태복음에만 있음)
b.
기타 신약: 이 사건 역시 복음서 외 직접 언급되진 않지만, 
제자들에게 커다란 영적 인상을 남겼습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예수님을 고백한 것은 복음서 전체를 통해서도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입니다. 요한일서 5:5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고 말하는데, 제자들은 풍랑 속 기적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을 깊이 체험한 것입니다.
c.
구약 예표: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은 구약에서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권능을 나타내셨습니다. 욥기 9:8에 “하나님은 홀로 바다 물결을 
밟으신다”고 했고, 시편 77:19에는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바닷물을 발로 
밟으심으로, 구약의 이러한 표현을 문자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또한 이 
장면에서 예수님이 “나다(It is I)”라고 말씀하신 원어는 “ego eimi”로 
여호와의 자기계시와 통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출애굽기 3:14의 
“스스로 있는 자” 의미). 제자들이 결국 “하나님의 아들”로 경배한 것은,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을 지니신 분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물 위를 걸은 베드로의 경우, 그의 믿음과 의심의 
교차는 우리 모두의 연약함을 보여주지만, 시편 94:18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질 때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다”는 말처럼, 예수님은 
베드로의 손을 붙잡아 주셨습니다. 이는 주님이 믿는 자를 붙드시는 
구원의 손길을 상징합니다.
12.
베드로의 신앙 고백 – 예수님의 기적과 가르침이 이어지는 가운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점차 깨달아갔습니다.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이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등 선지자 중 하나라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베드로의 고백을 크게 칭찬하시며,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몬에게 “너는 베드로(반석)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시고 천국 열쇠의 권세를 약속하셨습니다 (마 16:13–19). 이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제자 공동체의 믿음의 토대가 
되었고, 예수님은 비로소 자신이 고난 받고 죽임당했다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을 처음으로 분명히 예고하셨습니다 (마 16:21).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16:13–20; 마가복음 8:27–30; 누가복음 
9:18–21. (베드로의 메시아 신앙 고백 장면)
b.
기타 신약: 베드로의 이 신앙 고백은 초대교회 모든 사도들의 신앙을 
대변합니다. 요한복음 11:27에서 마르다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동일한 고백을 합니다. 
요한복음 20:31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게 하려 
함”이 복음서 기록 목적이라 밝힐 정도로,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신앙 
고백은 신약 전체의 핵심입니다. 사도행전 8:37, 로마서 10:9–10 
등에서도 이 믿음을 입으로 시인함으로 구원에 이름을 강조합니다.
c.
구약 예언: “그리스도(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은 구약의 왕-메시아 
사상과 신적 종말론적 인물을 가리키는 칭호입니다. 시편 2편은 메시아 
왕을 “내 아들”로 선포하며 (시 2:7), 다윗 언약(사무엘하 7:14)에서도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하여 왕을 하나님의 
아들로 비유했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예수님이 다윗 왕조의 약속된 
메시아이며 시편 2편이 가리킨 하나님의 아들-왕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16:19의 “천국 열쇠” 발언은 이사야 22:22에 나오는 
“다윗 집의 열쇠” 직분 (엘리아김에게 맡긴)을 연상시키며,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교회의 권위를 주신 것으로 해석됩니다. 반석 위에 세울 
교회는 아마모세가 반석에서 물을 내어 백성을 살린 사건(출 17:6)을 
상기시켜, 예수님이 교회의 터전이자 생수의 근원임을 보여주고, 
베드로는 그 믿음 위에 세워질 초기 교회의 지도적 역할을 암시합니다. 
무엇보다, 베드로의 고백은 이사야 28:16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노니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는 메시아에 
대한 비유가 실제로 성취되었음을 드러냅니다 – 예수님이 친히 교회의 
반석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13.
예수님의 변모 (변화산 사건) – 베드로의 고백 후 엿새쯤 지나,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시다가 
용모가 변화되는 놀라운 일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대표적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 가운데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그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별세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 눅 
9:31.) 베드로와 동료들은 졸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깨어나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겠나이다” 하며 혼잣말하듯 말할 때, 밝은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하늘에서 
음성이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이 음성을 듣고 엎드려 크게 
두려워하였으나,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셨습니다. 눈을 들어보니 오직 예수님만 계시고 모세와 엘리야는 
사라졌습니다 (마 17:1–8, 막 9:2–8, 눅 9:28–36). 산에서 내려오실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 변화산 사건을 통해 제자들은 
예수님의 신적 영광을 직접 목격하였고, 예수님이 율법(모세)과 
선지자(엘리야)의 완성자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17:1–9; 마가복음 9:2–9; 누가복음 9:28–36. 
(세 복음서 공히 기록)
b.
기타 신약: 베드로는 훗날 이 사건을 회상하며 “우리는 그의 
威榮의目擊者라”고 증언했습니다.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런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그 음성을 우리가 함께 
들었다고 2베드로 1:16–18에 기록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14의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는 말씀도 
요한이 이 변화산 체험을 염두에 두고 한 고백으로 종종 여겨집니다. 
히브리서 1:3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본체의 
형상”이라고 한 구절도 예수님의 본래 영광이 드러났던 순간을 
뒷받침합니다.
c.
구약 예표: 변화산에서의 영광은 구약 시내산 사건과 여러모로 
평행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 영광을 배울 때 얼굴에 광채가 
났던 일(출애굽기 34:29)이 떠오르고,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은 시내산의 여호와 음성(신명기 5:22)과 흡사합니다. 다만 
이때는 “이는 내 아들”이라는 신적 선언이므로, 시편 2:7의 “너는 내 
아들”이라는 메시아 임명식이 다시 한 번 하늘로부터 확인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옷이 희어지고 빛난 장면은 다니엘 7:9의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의 모습이나 다니엘 12:3의 “지혜 있는 자는 하늘의 빛과 
같이 빛날” 예언과도 연결됩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나타난 것은 
말라기 4:4–6의 율법(모세)과 선지 엘리야의 재림 예언을 동시에 
성취한 모습으로도 해석됩니다 – 곧 예수 안에서 율법과 예언이 
완성되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변화산 사건은 이처럼 구약의 
神顯(신현) 장면들을 집약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과 선지자의 
영광을 모두 통합하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증한 사건이었습니다.
14.
예루살렘 입성 (종려주일) – 예수님은 공생애 마지막 해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자신이 메시아 왕으로서 예언을 이루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감람산 벳바게 마을에 이르렀을 때, 제자 둘을 보내 마을 
맞은편에 매여 있는 나귀 새끼를 끌고 오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나귀 
새끼 위에 겉옷을 깔고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왕처럼 맞이하며 자기 겉옷을 길에 펴고, 어떤 이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무리는 앞에서 또 뒤에서 호산나 찬송을 외쳤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고 메시아를 환영했습니다 (마 21:1–9, 막 11:1–10, 
눅 19:29–38, 요 12:12–15). 이때 바리새인들이 무리의 소리를 책망하라고 
예수께 청하였으나, 예수님은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19:39–40). 마태복음은 이러한 나귀 
타신 입성이 스가랴 9:9의 예언 –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어린 나귀 새끼를 탔도다”를 성취한 것이라고 밝힙니다. 온 
성이 소동하며 “이 분이 누구냐?” 묻자, 무리가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고 알렸습니다 (마 21:10–11). 예수님은 눈앞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가까이 오셔서 성읍을 위해 우시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너도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하시며, 앞으로 닥칠 예루살렘의 멸망을 애도하셨습니다 (눅 
19:41–44).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21:1–11; 마가복음 11:1–11; 누가복음 
19:28–44; 요한복음 12:12–19.
b.
기타 신약: 예수님의 나귀 입성은 초대교회에서도 중요한 상징으로 
전해졌습니다. 요한복음 12:16은 제자들이 부활 후에야 이 일이 예언 
성취인 줄 깨달았다고 언급합니다. 또한 “호산나” 찬송은 오늘날까지도 
기독교 전례에 남아 있으며 (계시록 7:10의 구원 찬송 등과 통하는 
기원이 됩니다), 마태복음이 인용한 스가랴 9:9의 배경은 신약이 
예수님을 겸손의 왕으로 이해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c.
구약 예언: 이 사건은 스가랴 9:9의 예언을 직접적으로 이룬 것입니다 
–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하라…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겸손하여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또한 
무리가 외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라는 찬사는 시편 118:25–26의 
메시아 찬송을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시편 118편의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가 히브리어로 호시아나 (호산나)인데, 
그들이 예수를 구원자로 부른 셈입니다. 또한 창세기 49:11에 야곱이 
유다 지파에 대해 “그 어린 나귀를 포도나무에 맬 것”이라 한 축복은 
오래 신비로웠는데, 일부 교부들은 예수님의 나귀 타심과 연결지어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예레미야애가나 역대하 
36:19–20 같은 예루살렘 멸망 예언이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구약의 왕권 예언과 구원의 약속이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표출된 메시아 환영식이었습니다.
15.
성전 재정화와 마지막 가르침 –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먼저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을 보시고 
다시금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 하시며 상을 둘러엎고 비둘기 파는 자들을 
내쫓으셨습니다 (마 21:12–13, 막 11:15–17). 어린아이들은 성전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를 외쳤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분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편 8:2를 인용하시며 “어린아이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다”고 응수하셨습니다 (마 21:15–16). 그 주간 동안 
예수님은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감람산 근처로 나가셨습니다 
(눅 21:37). “너희는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1)는 말씀, 
포도나무 비유 (요 15장), 그리고 미래에 성령을 보내주실 약속 (요 16장) 
등 제자들에게 주신 많은 고별강화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한편으로 
예수님은 성전에서 여러 논쟁을 겪으셨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묻자,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를 반문하시어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당원들은 세금 문제로 올무를 놓았고, 
사두개인들은 부활 논쟁을 걸어왔으며, 율법사는 가장 큰 계명을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두 지혜롭게 대답하셔서 도전하는 자들을 침묵하게 하셨습니다 
(마 22장). 그리고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조목조목 책망하시며 “화 
있을진저”로 시작하는 일곱 가지 화 선언을 하셨습니다 (마 23장).
또한 감람산 위에서 말세의 징조와 예루살렘의 멸망, 그리고 인자의 재림에 
대한 예언적 설교(감람산 강화)를 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그 날과 그 때는 아버지만 아신다”
“깨어 있으라” 등의 교훈으로 제자들에게 미래에 대비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마 24–25장, 막 13장, 눅 21장). 이처럼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 마지막까지 
성전과 감람산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제자들을 교훈하셨습니다.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21:12–17 (성전 정화 두 번째); 마가복음 
11:15–19; 누가복음 19:45–48. 또 마태복음 22장, 23장 (성전 논쟁과 
서기관, 바리새인 책망). 마태복음 24–25장 (감람산 강화: 종말 예언과 
비유들).
b.
기타 신약: 예수님의 성전 활동과 논쟁은 사복음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 서신들은 이 시기의 가르침을 다양하게 발전시킵니다. 
예컨대 “산 자의 하나님” 논증(막 12:26–27)은 부활 교리의 근거로 
고린도전서 15장에서 확대되고, “큰 계명” 가르침(마 22:37–40)은 
로마서 13:8–10에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는 가르침으로 
재확인됩니다. 또한 감람산 강화의 재림 예언은 데살로니가전서 
4:15–17, 고린도전서 15:51–52 등에서 자세히 다루어집니다.
c.
구약 예언: 이 기간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은 연이어 구약의 
성취였습니다. 성전 청결은 앞서처럼 이사야 56:7, 예레미야 7:11의 
말씀이 적용되었고, 어린아이들의 찬미는 시편 8:2의 성취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성전에서 “집을 떠난 주인”이나 “포도원 품꾼” 등의 여러 
비유로 종교지도자들을 경고하신 것은 이사야 5:1–7의 포도원 노래 
같은 구약의 탄식을 상기시킵니다. 마태복음 23장의 일곱 화는 이사야 
5장의 여섯 화 선언과 대비되어, 예수님이 선지자들의 심판 선언을 
최종적으로 선포하신 모습입니다. 감람산 강화에서 예루살렘 멸망을 
예고하신 것은 다니엘 9:26–27의 “성읍과 성소가 파괴되리라”는 예언과 
통하며, 인자의 재림 언급은 다니엘 7:13–14의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왔다”는 환상을 직접 인용하신 것입니다 (마 24:30).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마지막 성전 가르침과 예언들은 구약의 율법과 
선지서를 총정리하고 새 언약 시대를 앞둔 최종 선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1:31–34의 새 언약 선언은 곧이어 성찬식에서 
성취됩니다).
수난과 부활
1.
최후의 만찬 – 유월절 양을 잡는 날 저녁, 예수님은 열두 제자와 함께 
예루살렘 한 다락방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셨습니다. 식사에 앞서 
예수님께서는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겨주는 겸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요 13:3–15). 식사 중에 예수님은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하리라”고 예고하셨고,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며 “주여 나는 아니지요?” 
묻자, 예수님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유다는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여쭈었고, 예수님은 “네가 
말하였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마 26:21–25). 유다가 곧 자리를 떠나 어둠 
속으로 나갔습니다 (요 13:30). 그 후 예수님은 빵을 들고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라” 하셨고, 또 잔을 들어 
감사 기도하신 후 돌리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새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떡을 먹고 잔을 마시며 이 의미를 새겼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에서 성찬식을 제정하시어, 자신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통해 새 언약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식사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많은 고별설교와 권면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16장) 
그리고 제자들을 위해 “하나 되게 해 달라”고 중보 기도하셨습니다 (요 17장).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함께 찬송을 부른 후, 모두 감람산으로 향하셨습니다 
(마 26:30).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26:17–29; 마가복음 14:12–25; 누가복음 
22:7–20; 요한복음 13:1–30 (유다 배신 예고, 발씻김) + 요 
13:31–17:26 (다락방 강화와 중보기도).
b.
기타 신약: 최후의 만찬에서 제정된 성찬은 교회에 지속되는 예식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23–25에서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며 성찬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떡을 먹으며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교회가 성찬을 통해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기념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히브리서 8:8–13은 
예레미야의 새 언약 예언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피가 더 나은 언약을 
세웠음을 논증합니다.
c.
구약 예언: 유월절 만찬 자체는 출애굽기 12장의 유월절 규례에서 
비롯된 것으로, 어린 양의 피로 죽음의 재앙을 피한 사건을 기념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유월절 양의 실체가 되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자기 피로 새 구원을 이루실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24:8에서 모세가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리며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한 것처럼, 예수님은 “새 
언약의 피”를 직접 언급하심으로 예레미야 31:31의 새 언약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또한 이사야 53:12에 “그가 자기 목숨을 버려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라,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였다”고 
한 예언처럼, 예수님의 피가 많은 사람을 위한 속죄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성찬식에서 떡을 떼어준 것은 출애굽기 16장의 만나와, 
지혜서 16:20의 “하늘에서 보낸 양식” 이미지와도 이어지고, 무엇보다 
시편 22:26 “온유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라”는 표현과 시편 116:13 
“구원의 잔을 들리라”는 구절이 예수님 안에서 구원의 잔치로 
실현되었습니다.
2.
겟세마네에서의 기도와 배신 – 만찬 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감람산 기슭의 한 과수원)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열한 제자 중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세 명을 더 데리고 가시며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리고 
돌 던질 만큼 떨어진 곳에 홀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9). 
예수님은 심한 고뇌 가운데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셨고, 
하늘로부터 천사가 나타나 힘을 돕기도 하였습니다 (눅 22:43–44). 세 번 
같은 기도를 마치신 후, 제자들에게 와보니 그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시며 그들을 깨우셨습니다 
(막 14:37–38). 그 때 무리를 이끄는 유다가 도착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보낸 무리들은 횃불과 무기들을 들고 있었고, 유다는 곧장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십니까” 하며 입맞추었습니다 – 이것이 곧 그가 짠 신호로서 
배신의 입맞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손을 대어 잡자, 베드로는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내리쳐 잘랐지만 예수님은 그를 만류하시고 
그 종의 귀를 고쳐주셨습니다 (요 18:10–11, 눅 22:50–51). 예수님은 
무리에게 “너희가 강도 잡는 것처럼 칼과 몽치를 가지고 왔느냐”고 
말씀하시며,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막 
14:48–49). 제자들은 이때 모두 두려워 예수를 버리고 흩어져 
도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붙잡히셔서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뜰로 
끌려가셨습니다. 이로써 제자 중 하나의 배신과 나머지 모두의 탈주라는, 
성경에 예고된 바 “목자를 치리니 양이 흩어질 것이라” (슥 13:7)이 그대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마 26:31 참조).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26:30–56; 마가복음 14:26–50; 누가복음 
22:39–53; 요한복음 18:1–11. (겟세마네 기도와 체포 장면 모두 기록)
b.
기타 신약: 히브리서 5:7은 겟세마네의 예수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하여, 예수님의 순종과 기도를 
높이 평가합니다. 또한 사도행전 1:16–20에서 베드로는 유다의 배신과 
그 최후(스스로 목매어 죽음)를 언급하며, 이것이 시편 69편과 
109편의 예언을 성경이 미리 예고한 바라고 해석했습니다.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을 때도 “유다는 제 길로 갔다”며 그의 배교를 
상기합니다 (행 1:25).
c.
구약 예언: “배신의 입맞춤”은 시편 41:9 “나의 신뢰하는 바 내 떡을 
먹던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발꿈치를 들었다”는 구절을 떠올리게 하고, 
예수님도 최후의 만찬 때 그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또한 스가랴 
11:12–13에 “그들이 은 삼십 개로 나의 삯을 삼았다”는 예언은 유다가 
받은 배신의 대가 은 30세켈로 정확히 성취되었습니다 (마 26:15). 그 
은돈이 나중에 토기장이의 밭 사는 데 쓰인 것까지도 예언되었지요. 
제자들이 흩어진 것은 위에 언급한 스가랴 13:7의 성취입니다 (마 
26:31에 직접 인용). 한편 예수님의 고뇌 어린 기도 장면은 이사야 
53:10의 “그가 질고를 당하며… 그의 영혼이 속건 제물”이라는 구절과, 
시편 75:8의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이 혼합되었나니” 하는 
심판의 잔 비유와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의 쓴 잔을 친히 
마시기로 순종하심으로, 이사야 51:22의 “내가 비틀게 하는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 주겠다”는 약속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결국 겟세마네는 
예수님의 철저한 순종(빌 2:8)과 인간적인 슬픔의 절정을 보여주며,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기 직전 영적 전투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3.
불법 재판과 부인 – 예수님은 체포된 후 먼저 대제사장 안나스에게 
끌려갔다가, 공식적인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관정으로 보내졌습니다. 거기서 
이미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예수를 심문했습니다. 많은 거짓 증인이 나섰으나 
증거들이 일치하지 않아 곤란하던 중, 두 사람이 “이 사람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가야바가 
“아무 대답 없느냐” 다그쳤으나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이 
직접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 찬송받을 이의 아들이냐?” 묻자, 
예수님께서 드디어 “내가 그니라. 그리고 너희가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막 14:61–62). 
대제사장은 옷을 찢으며 “신성모독”이라 외쳤고, 공회는 만장일치로 예수님께 
사형 판결을 내렸습니다 (마 26:63–66). 그들은 예수의 얼굴에 침 뱉고 
주먹질하며 조롱했습니다. 이 동안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달아났지만, 
베드로는 멀찍이 뒤따라와 대제사장의 뜰까지 들어갔습니다. 하인들이 불을 
피우고 있는 가운데 베드로도 함께 앉았습니다. 한 여종이 베드로를 보고 
“당신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하자, 베드로는 “나는 그를 알지 
못하오” 하고 부인했습니다. 잠시 후 다른 여종도 “이 사람 예수의 제자 중 
하나다” 하니, 베드로는 맹세코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였습니다. 
조금 후 곁에 서 있던 사람들이 “네가 갈릴리 사람인 것이 말투에서 
드러난다”“네가 그와 함께 있었다. 네 친척이 그 귀 잘린 말고라”고 
추궁하자, 베드로는 저주하며 “나는 그 사람을 모르오” 하고 세 번째 
부인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닭이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보시자, 
베드로는 주의 말씀이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신 것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통곡하였습니다 (마 26:69–75, 막 14:66–72, 눅 
22:54–62, 요 18:15–18, 25–27). 이로써 열두 제자 중 한 명은 배신하고, 
다른 한 명은 세 번 부인하며 모두가 예수님을 떠난 상황이 되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 유대 공회는 예수님을 묶어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겼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자를 죽여야 하니 판결해 달라”고 했고, 빌라도는 
신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묻자 예수님은 “내 
말이 옳다”고만 답하셨습니다.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 고소를 해도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빌라도는 갈릴리 출신이라는 걸 알고 관할자인 헤롯 
안티파스에게 예수를 보냈지만, 헤롯은 예수님이 기적 행하는 것을 보고싶어 
희롱만 하다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눅 23:8–11). 빌라도는 예수께 죄를 찾지 
못했기에 놓아주려 했으나, 유대인들은 더욱 소리질러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외쳤습니다. 마침 유월절 석방 관례가 있어 빌라도는 예수 
대신 바라바라는 강도를 풀어주고 예수를 놓아주길 타협하려 했지만, 군중은 
오히려 바라바를 원했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무죄하다”고 물을 씻으며 예수님을 군병들에게 넘겨 십자가형을 언도했습니다 
(마 27:24).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26:57–75; 27:1–26; 마가복음 14:53–72; 
15:1–15; 누가복음 22:54–71; 23:1–25; 요한복음 18:12–40; 19:1–16. 
(예수님의 종교재판, 베드로 부인, 빌라도와 헤롯 앞에서의 정치재판)
b.
기타 신약: 예수님의 침묵과 불법재판의 불의는 베드로전서 2:22–23에 
묘사되었는데, “욕을 당하시되 대신 욕하지 않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께 맡기셨다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6:13에서도 바울은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증언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언급하며 (예수님의 선한 증언을 본받으라 권면), 아마도 예수님이 
자신을 진리의 왕이라 증언하신 일을 가리킨 것으로 보입니다 (요 
18:36–37). 베드로의 부인은 교회에 큰 교훈이 되었고, 훗날 베드로는 
회개 후 담대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2:12–13에서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고 경고하면서도, 
“우리가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다”고 하여 베드로처럼 
실패한 성도를 향한 주님의 신실하심을 암시합니다.
c.
구약 예언: 예수님의 재판과 고난에는 수많은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침묵은 이사야 53:7의 “학살할 양처럼 잠잠하였다”는 말씀의 
그대로였습니다. 거짓 증인들은 시편 27:12, 35:11 등에 예고되었고, 
조롱과 수모는 이사야 50:6 “등을 때리는 자들에게 내주고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내주었다”, 미가 5:1 “그들이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장의 뺨을 치리로다”에 나타나 있습니다. 빌라도의 씻은 손은 
신명기 21:6–9의 “무죄함 표시”와도 겹쳐지며 아이러니를 더합니다. 
백성들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 (마 27:25) 한 건 
무서운 자기저주였지요. 베드로의 통곡은 스가랴 12:10 “그들이 그 
찌른 바를 보고 통곡하기를” 예언과 상통합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냐” 
질문에 “내가 그니라” 하신 것은 다니엘 7:13–14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권세를 받았다”는 메시아 환상을 자신에게 적용한 것이었고, 
대제사장들은 그 신성선언을 받아들이지 못해 배척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란 칭호는 메시아 왕을 뜻하나, 아이러니하게도 로마 총독 앞에서 
조롱 섞인 칭호로 쓰였고 십자가 죄패에까지 쓰입니다 (요 19:19). 
그러나 이는 시편 2편 등 왕의 시편들이 암시한 메시지를 반영합니다. 
총체적으로, 예수님의 재판은 인류의 죄악이 극에 달한 상황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정확히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23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것”).
4.
십자가 처형과 죽음 – 총독 빌라도의 판결 후,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총독 
관저 뜰로 끌고 가 심한 희롱을 가했습니다.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나무로 
엮은 가시관을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오른손에 들려 조롱하며 “유대인의 왕 
만세!” 라 놀렸습니다. 또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내리치며 
때렸습니다 (마 27:27–31). 그 후 예수님께서는 골고다 형장까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했는데, 너무 쇠약해지셨으므로 로마 군인들은 억지로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대신 지고 가게 하였습니다 (눅 23:26). 오전 9시쯤 
(제삼시) 예수님을 골고다(해골)라 불리는 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양쪽에는 두 명의 강도가 함께 처형당했습니다 (막 15:25, 27).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이 뚫리고 십자가가 세워지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은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며 자기를 못 박는 자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들이셨습니다 (눅 23:34). 
군병들은 예수님의 겉옷을 네 등분 하여 나누고, 속옷(솔기 없는 옷)은 찢지 
않고 제비뽑아 한 사람 몫으로 취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겉옷을 제비뽑나이다” 한 시편 22:18의 예언을 성취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지나가며 머리를 흔들고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더니,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모욕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니 지금 내려와 봐라, 그러면 믿겠다”고 비웃었습니다. 함께 
달린 강도 중 하나도 욕했으나, 다른 한 강도는 예수의 무죄를 인정하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그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눅 
23:39–43).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몇 여인, 그리고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도 십자가 곁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제자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 하여 육신의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요 19:26–27).
정오쯤부터 오후 3시까지 (제육시~제구시)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고통 
속에 예수님은 큰 소리로 부르짖으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 하셨습니다 (마 
27:46). 이는 시편 22:1의 애가를 그대로 옮긴 말씀이며, 예수님이 죄의 짐을 
지고 아버지에게서 버림받는 고통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주위에 서 있던 몇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목마르다” 
하시니, 한 사람이 신 포도주 (초) 적신 해면을 우슬초 줄기에 달아 입에 
대어 마시게 했습니다. 이로써 “목마름으로 초를 마신다”는 시편 69:21의 
예언이 응했습니다. 초를 입에 머금으신 예수님은 마침내 “다 이루었다” 크게 
외치시고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말씀하신 후 머리를 
숙이고 영혼이 떠나가셨습니다 (요 19:30, 눅 23:46). 그 순간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졌고 무덤이 열리는 등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마 27:51–52). 이 장면을 지킨 로마 
백부장은 크게 두려워하며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막 15:39).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27:27–50; 마가복음 15:16–37; 누가복음 
23:32–46; 요한복음 19:16–30. (십자가 처형과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 기록)
b.
기타 신약: 십자가의 의미는 신약 전체에 걸쳐 핵심 주제가 됩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구원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 등 수많은 구절이 
예수님의 죽음의 구속적 의미를 선포합니다. 히브리서 10:19–20은 
“휘장 곧 그의 육체”라 하여 성소 휘장 찢어짐을 예수님의 몸과 
연결하고, 베드로전서 2:24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고 하며 이사야 53장을 인용합니다. 특히 “다 이루었다” (요 
19:30)는 말씀은 구원의 완성을 뜻하며, 골로새서 2:14–15는 십자가로 
“우리에게 불리한 법조문을 제하여버리고 승리하셨다”고 해석합니다.
c.
구약 예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메시아 고난 예언의 집대성입니다. 
시편 22편은 손발이 뚫림, 사람들의 조롱, 겉옷 나눔과 제비뽑음 등 
세세한 부분까지 예언했고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메시아가 우리의 죄악을 지고 찔리고 상함으로 치유와 용서를 가져올 
것을 예언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대로 그 성취입니다. 특히 “그가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다”(사 53:12)는 대로 예수님은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셨고, “자신을 속죄제물로 드렸다”는 (사 
53:10)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출애굽기 12장의 유월절 어린양은 
예수님을 예표했고, “그 뼈를 꺾지 말라”는 규례(출 12:46)가 
예수님께도 적용되어 다리 부러뜨리는 대신 창으로 찌름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요 19:33–37이 시편 34:20, 스가랴 12:10 성취로 
설명). 예수님의 외침 “어찌하여 날 버리셨나이까”는 시편 22:1 
그대로이며, “목마르다”는 외침에 초를 준 것은 시편 69:21이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순간 성소 휘장 찢김은 구약 제사제도의 
종결과 새 길 개방을 의미하고 (레위기 16:2 대비), 요나의 사흘간 
표적 (마 12:39–40)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기간을 예고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는 스가랴 12:10, 
“해가 어두워진다”는 아모스 8:9 등의 말씀도 성취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한마디로, 십자가에서 예언의 퍼즐 조각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아 하나님의 구원 드라마가 완성된 것입니다.
5.
장사 (무덤에 묻히심) – 예수님께서 운명하시자, 온 유대 땅은 마침 유월절 
안식일을 앞둔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시신을 신속히 처치해야 했습니다. 이에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공회원이자 예수의 은밀한 제자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빌라도는 백부장에게 예수의 죽음이 
확실한지 확인한 후 허락했습니다 (막 15:42–45). 요셉은 세마포로 예수님의 
시신을 정성껏 싸고,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모셨습니다. 그 무덤은 
요셉이 자기 용도로 마련해둔 것으로, 아직 아무도 장사된 적 없는 
곳이었습니다. 저물 때여서 재빨리 장례를 치른 것입니다 (마 27:57–60). 이 
과정에 바리새인이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향품 (모략과 침향 혼합 
가루 약 백 근)을 가져와 함께 장사지내는 데 참여했습니다 (요 19:39–40). 
무덤 바위 문을 큰 돌로 굴려 닫아 봉하였고,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등 여자들이 그 맞은편에서 어디에 장사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마 
27:60–61). 이튿날 (안식일)에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에게 가서, “저 사기꾼이 
살아있을 때 사흘 만에 살아난다 한 것을 기억하니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고 
부활했다 할까 염려된다”고 말하며 무덤을 파수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빌라도는 “경비병을 붙여줄테니 단단히 지키라” 하였고, 그들이 가서 
경비병을 세우고 돌을 인봉하여 무덤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마 27:62–66). 
이렇게 예수님의 시신은 부자 요셉의 새 무덤에 안치되어 안식일 동안 쉬게 
되었습니다.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27:57–66; 마가복음 15:42–47; 누가복음 
23:50–56; 요한복음 19:38–42.
b.
기타 신약: 예수님의 매장은 복음 전파의 기본 내용 중 하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4에서 바울은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선언하고, 사도신경에도 “장사 지낸 바 
되사”가 포함됩니다. 즉, 예수님의 실제 죽음과 부활의 실재성을 
강조하기 위해 매장과 빈 무덤이 필수적 증거로 간주되었습니다.
c.
구약 예언: 이사야 53:9는 메시아에 대해 “그 무덤이 부자와 함께 
있었다”고 예언했는데, 예수님께서 실로 부자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됨으로 이 말씀이 응하였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12:40에서 
예수님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사흘 밤낮 있었던 것을 자기 죽음과 
장사의 기간에 대한 “표적”으로 언급하셨는데, 정확히 금요일 오후부터 
주일 새벽까지 3일째 되는 때에 부활하심으로 이 표적을 
성취하셨습니다. 시편 16:10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은 베드로와 바울이 사도행전 (행 2:31, 13:35)에서 
인용하여 예수님이 시신이 부패할 만큼 오래 무덤에 머물지 않으셨음을 
증언합니다. 유월절 양의 뼈가 꺾이지 않는 규례 (출 12:46)가 
예수님의 다리가 꺾이지 않고 창으로 옆구리가 찔린 채 장사된 것에서 
확인되고, 무교절(누룩없는 빵의 절기) 첫날인 안식일에 예수님의 
시신이 누룩(죄) 없이 무덤에 계신 것도 상징적으로 연결짓는 해석이 
있습니다. 요컨대 예수님의 장사는 구약의 예언된 대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곧 다가올 부활의 전주곡이 되었습니다.
6.
부활 (빈 무덤) – 안식일 다음 날인 일요일 새벽, 이른 동틀 무렵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등 몇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려고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때 큰 지진이 일어났고,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습니다. 그의 형상은 
번개 같고 옷은 눈같이 희었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은 두려워 떨며 
죽은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마 28:1–4). 여인들이 도착하여 보니, 무덤에서 
돌이 굴려져 입구가 열려 있었고 (막 16:4),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이 당황해할 때 눈부신 옷 입은 두 천사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살아있는 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전에 갈릴리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눅 
24:5–7). 여인들은 크게 기뻐하며 두려움 속에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러 
뛰어갔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달려가 시몬 베드로와 요한에게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모르겠다”고 알렸습니다 (요 20:2). 
베드로와 요한이 곧바로 무덤으로 달려가 보니, 정말로 시신은 없고 세마포만 
놓여 있었습니다. 머리를 쌌던 수건은 한쪽에 객혀 있었습니다 (요 20:3–8). 
두 제자는 그제서야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요 20:9).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울고 있다가 예수님의 시신을 두 천사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뒤돌아선 순간 예수님께서 부활의 몸으로 서 
계셨지만, 마리아는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인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부르시자 그는 주님인 줄 깨닫고 “라보니!” (선생님이여)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하시며 제자들에게 가서 부활 소식을 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요 
20:11–18). 이처럼 예수님은 사흘 만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고, 그의 
무덤은 비어 있게 되었습니다.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28:1–8; 마가복음 16:1–8; 누가복음 24:1–12; 
요한복음 20:1–13 (빈 무덤과 천사, 여인들의 보고). 요한복음 
20:14–18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심).
b.
기타 신약: 예수 부활은 신약 신앙의 중심입니다. 사도행전 2:32에서 
베드로는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증인이로다”라고 
선포하고, 사도행전 4:33은 사도들이 “주 예수의 부활을 힘있게 
증언”했다고 전합니다. 고린도전서 15:14–20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라고까지 말하며, 
하지만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기에 신앙도 
구원도 참됨을 역설합니다. 로마서 1:4는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능력있게 선포되셨다”고 했습니다. 
부활에 관한 예언된 “성경대로 사흘만에 살아났다”는 구절은 
고린도전서 15:4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c.
구약 예언: 시편 16:10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한 구절로 사도들이 설교에서 
인용했습니다. 호세아 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3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라는 말씀이나, 요나가 사흘만에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것은 (마태 12:40) 예수님의 사흘만의 부활을 가리키는 
예표로 여겨집니다. 또한 이사야 53:10–11은 “그가 자기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린 후 그의 날들을 길게 볼 것이요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그의 손에서 번영하리라”고 하여, 고난받은 메시아가 
다시 삶을 얻어 계속 사역할 것을 암시합니다. 시편 22편도 죽음의 
고통을 그리다가 마지막에 “주의 후손이 주를 전하고” (시 22:30) 
영원한 경배를 노래하는데, 이는 고난 후 영광, 즉 부활을 내포합니다. 
욥기 19:25–27에서 욥은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설 것”을 확신했는데, 이는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을 기대하는 
신앙과도 통합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이러한 구약 성도들의 희미한 
소망들이 확실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7.
부활하신 예수님의 나타나심 – 예수님께서는 살아나신 후 40일 동안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이시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행 
1:3). 그날 이른 아침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나신 후 (막 16:9), 
부활일 오후에는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동행하셨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인 줄 알아보지 못했으나, 길에서 
성경을 풀어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졌고, 마을에 모셔서 함께 떡을 떼실 때 
비로소 눈이 밝아져 예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보이지 않게 사라지셨고, 두 사람은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눅 24:13–35). 그날 저녁에는 예수님의 열한 제자가 한 
곳에 모여 문을 잠그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문을 통과하여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고 인사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놀라고 
무서워했으나, 예수님은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생선 한 토막을 잡수심으로 
실제 몸으로 살아나셨음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눅 24:36–43, 요 20:19–20). 
그런데 그 자리에 없던 도마는 이 말을 듣고도 믿지 못하여 “내가 그의 
못자국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 했습니다. 여드레 후 제자들이 
다시 모여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만져보라” 하셨고, 도마는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고 
신앙고백을 올렸습니다 (요 20:24–28).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20:29). 이후 
예수님은 갈릴리에서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밤새 
고기잡이 하던 베드로 등 제자들 앞에 나타나, 많이 잡히지 않던 고기가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자 153마리나 잡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침 식사로 떡과 구운 생선을 마련해주셨습니다 (요 21:1–14). 식사 
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시며 사명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요 21:15–19). 또한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갈릴리 
에서 제자들을 만나 지상명령을 주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시며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마 28:16–20). 누가복음 24:50–51에 따르면 
예수님은 예루살렘 근처 감람산 베다니 쪽에서도 제자들을 축복해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5–7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게바(베드로)열두 
제자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그리고 야고보와 모든 사도들에게도 
나타나셨다고 증언합니다. 심지어 부활 후 사울(바울)에게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시기에 나타나 보이셨다고 고백합니다 (고전 15:8).
a.
관련 복음서: 마태복음 28:8–20; 마가복음 16:9–20 (〔주석: 9–20절은 
일부 사본에서 없음〕); 누가복음 24:13–53; 요한복음 20:19–31; 
21:1–25.
b.
기타 신약: 사도행전 1:3은 예수께서 부활 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여러 확실한 증거로 자신을 보이셨다고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나타나심은 사도들의 가장 강력한 복음 증거였습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10:40–41에서 “하나님이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미리 택하신 증인에게 하셨다. 우리는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 그와 함께 먹고 마셨다”라고 증언했습니다. 
요한일서 1:1–3도 “우리가 듣고 눈으로 보고 주목하고 손으로 
만졌다”며 생명의 말씀 되신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바울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전 15:5–8) 여러 부활 현현을 나열하며, 부활의 
실재를 강조합니다.
c.
구약 예표: 부활의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먹고 마신 일은, 출애굽기 
24:9–11에서 하나님을 뵌 후 먹고 마신 장면과 흡사하여,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암시합니다. 엠마오에서 떡을 떼실 때 제자들의 눈이 
밝아진 것은 주의 만찬을 연상시키고, 창세기 3장에서 열매 먹고 눈이 
밝아져 타락한 것이, 이제는 떡을 떼며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복된 눈 
밝음으로 반전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이 처음에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의심한 것은 구약에 기드온이나 토마처럼 표징을 구한 
사례들과 비추어 이해되고, 예수님의 “믿지 않고는 복음을 볼 수 
없다”는 교훈으로 이어졌습니다. 갈릴리에서 주신 지상명령은 아브라함 
언약 “네 씨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얻을 것” (창 22:18)의 
성취가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선언한 것입니다. 시편 2: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라”는 말씀이 이제 
제자들을 통해 실현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명하신 것은 구약에 암시된 삼위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분명한 선포입니다 (이사야 48:16 등 삼위 암시 구절). 그리고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으리라” 약속은 여호수아 1:5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 약속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 
즉 부활의 예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으로서 언제나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승천과 사역 완성
1.
승천 (하늘로 올려지심) – 부활 후 40일째 되는 날, 예수님은 제자들을 
예루살렘 근교 감람산 베다니 근처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셨습니다 (눅 24:50).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고 당부하셨습니다 (행 
1:8). 이 일을 마치신 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들어올려지셨습니다. 
구름이 예수님을 가려 더 이상 보이지 않게 하였지요 (행 1:9). 제자들이 
하늘을 주목하며 바라보고 있을 때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곁에 서서 
말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왜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행 
1:10–11). 제자들은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눅 24:52) 다락방에 
모여 하나되어 기도하며 성령 강림을 기다렸습니다 (행 1:12–14).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지상 사역을 모두 마치시고, 아버지께로 돌아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 후 10일째 되는 날, 약속하신 
성령께서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임하였고, 교회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a.
관련 복음서/서: 누가복음 24:50–53; 마가복음 16:19–20 (〔주석: 막 
16:19–20은 일부 사본에서 없음〕); 사도행전 1:3–12.
b.
기타 신약: 예수님의 승천은 히브리서 4:14 “승천하신 대제사장”이라는 
표현으로 신학적으로 적용되고, 에베소서 4:8–10은 시편 68:18을 
인용하여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들을 데리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해석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늘로 승귀하심으로 
교회에 성령의 선물과 각종 은사를 부어주신 것을 뜻합니다. 또한 
로마서 8:34, 히브리서 7:25 등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대제사장으로 묘사됩니다. 베드로전서 
3:22도 “그는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니…”라고 하여 
천사들과 권세들이 그에게 복종한다고 선언합니다. 승천은 예수님의 
재림 약속과도 연결되어, 요한복음 14:2–3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준비하러 가노니…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는 말씀과 
사도행전 1:11의 천사 메시지로 확증되었습니다.
c.
구약 예언: 시편 110:1 “내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오른편에 앉으라”는 구절은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약 구절 중 
하나인데, 예수님의 부활 승천으로 이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또 시편 
68:18의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포로들을 이끄시고 선물을 
받으셨다”는 구절은 앞서 에베소서에서 승천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다니엘 7:13–14에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연로하신 
이에게 나아가 영광과 나라를 받았다”는 환상은 예수님이 승천하여 
영원한 통치권을 받으심을 예고한 것입니다 –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재판정에서 자신이 인자라 언급하실 때도 인용되었고, 승천 때 실제로 
구름 속에 들려 올라가신 장면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열왕기하 2:11에서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한 것은 예수님의 승천을 미리 보여준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으로 이제 이 땅에서의 메시아 
사역은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길…” 한 
시편 말씀처럼 아버지 우편에 앉으셔서 온 우주의 주권자로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구약의 여러 재림 예언들 – 스가랴 14:4 “그 날에 
그의 발이 감람산에 서실 것”, 다니엘 7장의 인자 재림 – 은 천사의 
약속대로 장차 예수님이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임하심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교회는 승천하신 주님을 대신하여 권능으로 복음을 
증거하며, “오라 주 예수여”를 소망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20).
참고: 이 연대기는 네 복음서의 기록과 사도행전 등의 증언을 시간 순서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건별로 구약의 예언과 신약 다른 부분의 연결 구절들을 함께 
제시하였으며, 모든 인용과 내용은 성경 본문에 근거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통하여 우리는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고 신약의 복음이 완성되는 역사를 보게 됩니다. 
그의 탄생부터 사역과 죽음, 부활과 승천까지 일어난 모든 사건은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질서 있게 이루어졌습니다. “때가 찼으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다”는 말씀처럼 (갈 4:4), 예수님은 정하신 때에 오시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며, 다시 영광 중에 하늘로 올라가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 교회를 세우셨고, 머지않아 
다시 오셔서 모든 예언을 최종적으로 완성하실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다”라는 신앙 고백 위에 세워진 우리 모두는, 그의 삶과 말씀을 따라 
복음을 전하며 재림의 그날을 소망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