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적으로 보이는 것(appearance)과 실체(reality) (마 7:21-23)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우리 주님께서 의도가 선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수행하여야 선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오직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면만을 보면서 체면과 실체를 혼돈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말씀을 가르치던 주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주님께서 21절에서 참고로 말하는 사람들은 도구일 뿐입니다. 도구는 주의 종(servant)이 아닙니다. 종은 자신이 선포하는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증거하며 어디로 가던지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이 되는 사람입니다. 성령의 세례는 종들이 선포하는 내용이 사람들에게 역사하게 하셔서 그 말씀대로 변화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의 외적인 행위와 실체가 하나가 되며 같게 됩니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제자도의 시험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 속에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이 놓치지 말아야 하는 사실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옳지 않은 동기로 말씀을 증거한다고 하더라도 그 말씀이 주의 말씀이라면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입니다 (참조, 빌 1:15).

 

성령은 외적으로 보여지는 것과 실체가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일들을 우리 안에서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그 엄청난 구속은 성령의 살아 역사하시는 효력에 의하여 우리의 경험 가운데 현실로 나타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성령을 믿으라고 부탁한 적이 없습니다. 성령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보이는 것(appearance)과 실체(reality)는 하나가 되게 하고 같게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구원을 이루시며 우리는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가운데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 구원을 밖으로 나타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모험거리를 주신 것을 감사합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의 순종은 아무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죄사함의 완전함”이라는 이단은 우리가 구원을 받으면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하는데 이는 사탄의 거짓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넣어주신 것이며 그 순간부터 우리의 성품은 하나님께 가치가 있게 됩니다. 구원을 받기 전에는 하나님을 순종할 능력이 우리에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구속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아들의 유전형질을 심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불순종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제자로서의 삶은 어렵지만 분명하게 영광스러운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을 근거로 하여 우리는 이제 균형을 가지고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36). 다닌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누구에게 보이는 행동도 아니고 껍질로 씌운 것도 아닌 그저 그 사람의 평범한 성품을 말합니다.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줄을 내가 아노니” (왕하 4:9).

 

(1) 사람들의 인정 (마 7:21)

 

“나더라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인간의 본성은 감투를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의 신분은 실제가 아니라 모조품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 신분을 취하는 것은 대체로 쉬운 일이며 어떤 단계에 이르면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는 것보다 감투와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 훨씬 더 쉬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증명하다(testify)”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고백하다(confess)”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마 10:32).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은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그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시인(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만일 네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내 하나님 앞에서 너를 부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는 한, 우리는 주의 제자로서의 신분(badge)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제자로서의 신분을 거절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 신분을 차지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실제가 아니면서 가짜 신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면서도 예수님의 제자의 신분을 가진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신분은 귀한 것이지만, 신분과 실제를 우리가 오해하게 되면 우리는 혼동에 빠지게 됩니다. 만일 주님의 제자로서 신분만 있는 사람과 실체가 있는 사람을 분변하길 원한다면 그 제자는 분변의 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성령이십니다. 우리는 신분과 실체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는 정직한 믿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분명히 그래야 하지만, 주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은 가끔 이 둘이 따로 가는 일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 중에 바른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자들이 있더라도 그들의 전파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존귀히 여기는 경우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길, 설교자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그들의 열매로 판단하라고 하십니다.

 

(2) 치유 장사꾼들 (Remedy Mongers)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만일 우리가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고 많은 권능을 행할 수 있다면 분명히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모든 삶의 구체적인 분야에서 증거를 드러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 주님은 자신들은 주님께서 충성되지 않으면서 사회의 악들을 치유하기 위하여 주님의 말씀과 능력을 이용하는 자들에 대하여 경고하십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이들에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고백)하는 말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단지 치유자로서만 가르쳐왔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0:20절에서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귀신들이 그들에게 순복한다고 좋아하기 보다 그들이 주님과 바른 관계에 있게 된 것을 기뻐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단 한가지 초점으로 돌아옵니다. 언제나 모든 상황에서나 개인적이던 공적이던 예수 그리스도와 깨끗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3) 보응 대책 (마 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우리 주님께서는 이 엄중한 말씀을 통하여 성경 주석가들 및 성경 예언자들, 기적을 행하는 자들에게 중 몇몇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란 “법을 행하는 자들”에게서 벗어난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들을 변형시키더니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듭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 너는 성령을 받은 적이 없으며, 네게 진리를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귀히 여기시겠으나 너는 진리에 결코 속한 자가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내게서 떠나가라.” 인간의 영혼에게 주께서 던질 수 있는 가장 무섭게 분리시키고 정죄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직 성령을 의뢰하고 성령을 인식할 때만이 우리는 주님의 경고가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분변하게 됩니다. 어떤 설교자가 옳은 것을 가르치고 하나님께서는 그 설교를 축복하시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 혼돈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언제나 경고하십니다. 절대 안된다. 안돼. 안돼. 당신이 최고의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를 신뢰하면 안됩니다. 주 예수님만 믿어야 합니다.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 3:5).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시 146:3)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라고 합니다. 언제나 이 경고를 우리 마음 속에 두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사람도 우리가 무작정 따르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우리를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유명한 성도들을 따르라고 명령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순종을 따를 뿐입니다.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고전 4:17). 하나님과만 가까이 지내십시오. 빛 가운데 거하십시오. 도덕적이던, 지적이던, 영적이던… 어떠한 역경도 그 선상에서 맞아들이십시오. 우리가 우리의 눈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떼는 순간 우리는 깜짝 놀라게 됩니다. “저기 또 한 사람이 쓰러지는구나. 저 사람만은 제대로 서 있을 줄 알았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만 바라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