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훈련의 방향 (마 5:29-30)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향을 바꾸신다면 훈련의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위 구절에서 (마 5:29-30) 예수님께서 여전히 오른 손과 눈을 잘라내라는 엄격한 훈련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훈련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의 몸이 잘못된 성향에 의하여 사용되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성향이 우리 안에 들어올지라도 우리의 옛 몸은 그대로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몸을 훈련하여 새로운 성향에 순종하는 종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롬 6:19).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이 뜻이 무엇입니까? 당신 안에 최선이 아닌 “옳은 것들”을 단호히 엄격하게 다루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차선은 최선의 원수입니다.” 차선은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지만 충분하도록 좋은 것은 아닙니다. 당신의 오른 손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최선의 것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만일 그것이 당신의 영적인 삶의 진보 가운데 죄를 짓게 하며 예수님의 교훈을 따르는 것을 방해한다면 잘라 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엄격한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절대로 애매모호하지 않으셨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길, 죄를 짓기 보다 불구자가 되고 불행하여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십니다. 사람의 눈에 보기에 불구자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사랑스러운 것이, 사람의 눈에는 사랑스럽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불구자인 삶보다 훨씬 낫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주께서는 우리에게 불구자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옳게 보여도 하나님의 눈에는 너무나 많이 망가지고 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교훈 중에 우리가 쉽게 놓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영적인 삶의 시작은 자연적인 삶을 (the natural life) 주께 희생 제물로 드릴 때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자연적인 삶은 도덕과는 무관합니다. 나를 지배하는 성향에 의하여 자연적인 삶이 도덕적일 수도 있고 비도덕적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연적인 삶을 희생 제물로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자연적인 삶을 선물로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연적인 삶을 영적인 삶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롬 12:1-2). 이 부분에서 아담이 실패하였습니다. 그는 자연적인 삶을 주께 제물로 드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순종함으로 그것을 영적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이를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자연적인 것이 영적인 것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희생 제물로 드려지도록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질서는 자연적인 것이 순종에 의하여 영적인 것이 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죄 때문에 자연적인 것이 희생 제물이 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하여 이렇게 달라진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영적이길 원한다면 자연적인 것을 취하여 희생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영적인 것을 위하여 자연적인 것을 희생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라고 말하면,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당신은 영적인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는 처벌이 아니라 영적인 원칙일 뿐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는 영적 훈련은 사람들에게는 가장 엄격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그리스도인의 삶보다 더 영웅적이고 장엄한 것이 없습니다. 영성(Spirituality)은 충분한 생명력이 없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사람들의 경건을 부추기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영성은 힘에 있어서 아주 강력한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순종하면 주께서는 가장 타락하고 변질되고 죄로 가득찬 생명을 영적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순결(Chastity)은 강하고 정열적인 것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순결하려고 하는 자들마다 영광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일들이 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향을 바꾸시면 사람은 그의 몸이 새로운 성향과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새로운 성향이 우리의 몸을 통하여 표현되게 해야 하는데 이는 오직 뛰어난 훈련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이 훈련은 영적인 삶을 위하여 대단히 많은 것들을 잘라내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것들 중에는 우리에게 오른손과 오른눈과 같은 것들이지만 우리는 감히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때 우리를 아는 세상 사람들이 말합니다. “오른손이 잘못을 했더라도 그것을 잘라내다니 얼마나 터무니없는가!” 그러면서 우리를 광신자나 괴짜라고 부릅니다. 만일 우리가 광신자 또는 괴짜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 이는 아마도 우리가 삶에 대하여 전혀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처음에 성령께서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우리에게 옳지 않은 굉장히 많은 것들을 하지 못하도록 저지하실 것입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잘라내라고 결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뭔가를 금한다고 하여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그들에게도 그것들을 금하라고 결정할 권리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적인 성품을 자라나기 위하여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뭔가 부족한 바보들처럼 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옳지 않은 일들만을 포기하려 한다면,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안됩니까? 뭐가 잘못입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부디 가서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 선상에서는 영적인 성품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그것들을 포기하시겠습니까? 물론이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가 가진 최고의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단 한가지의 권리가 있다면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는 권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