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도덕률 (The Moral Law)

선이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기만 한다면 모든 사람이 선을 선택할 것이라는 믿음이 모든 세대 가운데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역사와 인간의 경험은 그렇지 않음을 증명한다. 선을 아는 것과 선한 존재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양심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주지만, 그렇게 행할 능력까지 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롬 7:15).

잘못을 용납한다고 해서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틀리다. 반역한 인간의 속성은 그것이 옳던 말든 상관없이 그 일을 할 것이다.

현실 가운데 문제는 옳은 것을 모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옳은 대로 행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나의 자연적인 영은 내 자신이 어떠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지만 결코 그렇게 될 수는 없다. 오직 생명을 붙드시는 생명 그 자체, 즉 성령을 받을 때만이 그렇게 될 수 있다. 이것이 구속의 실제적인 면에서의 역사다.

“도덕이란 모든 사람들의 공리에 기초한다”라는 격언이 있다. 그러나 이 격언은 맞지 않다. 양심은 도덕의 원천으로서 사람이 해서는 안될 일을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양심은 사람의 이성적 기능에 위치하지 않고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영에 위치한다. 양심은 거듭나지 않은 상태의 사람을 돕는 기능을 한다.

왜 사람이 자신의 악함을 다 드러내지 못할까? 그 이유는 사람 안에 있는 악을 향한 충동을 제어하는 하나님의 도덕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당신이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서 도덕률의 잔재인 양심이 당신 안에서 발버둥을 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도덕률은 각 개인의 한 부분이면서도 그 개인으로부터 완벽하게 독립하여 대항하는 소리를 낸다.

하나님의 법이 제시될 때, “내게 이 정도면 충분해. 더 이상 완벽하게 지킬 필요가 없어” 라고 말하는 교만한 자아 확신을 주의하라.

영적이던 신체적이든 질병의 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반드시 구속의 빛 가운데서 다루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이 세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병원이 아니라 십자가 앞에서 그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우리는 도덕적 질서에서 벗어난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죄를 범한 것인지 알려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속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루셨는지를 알아야 한다.

오늘날 사회에 만연된 죄악들은 사회 윤리와 도덕 질서를 강조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위한 동정심을 펼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의 계명을 알 때 가능하다.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자가 많지 않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선한 것을 사랑한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는 이유는 자신의 흉악한 악 때문이 아니라 도덕적인 선함 때문이다.

우리의 불법은 “내게로 오라”는 주의 말씀에 반항함으로 가장 많이 드러난다.

자유는 법을 어길 수 있는 능력을 뜻하지 않는다. 방종은 제 맘대로 하겠다는 완고함이다.

사람은 거룩하지 않으며 부도덕하다. 부도덕이 인간의 바탕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사람이 얼마나 선한가는 중요하지 않다. 물론 사람이 사람 앞에서는 부도덕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으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언제나 부도덕하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눅 16:15).

지적인 회의론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 회의론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스스로 오류에 빠져 분별력을 상실하기까지는 모든 사람에게는 선과 의와 진실을 믿는 마음이 있다.

영적인 황홀경에 사로 잡히는 것을 주의하라. 종종 영적 활홀경은 하나님의 위대한 규례들을 망각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건전한 도덕의 기본마저 흔들어 놓을 정도로 분별력을 잃게 만든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는 일이 없다. 오직 옳은 것만이 잘못된다. 모든 오류는 진리에서 시작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류가 힘을 가질 수 없다.

도덕적인 영역과 관련한 것은 미루지 말고 신속하게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절대로 도덕적 결정을 미루지 말라.

영적인 문제에 대해 재고할 때마다 항상 빗나가게 된다. 영적인 결정을 내려야만 실체를 볼 수 있도록 빛이 비친다. 결단을 내린 후에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인간의 생명 간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The Moral Law

It has been a favourite belief in all ages that if only men were taught what good is, everyone would choose it; but history and human experience prove that that is not so. To know what good is is not to be good.

My conscience makes me know what I ought to do, but it does not empower me to do it. “For that which I do I allow not: for what I would, that do I not; but what I hate, that do I” (Romans 7:15).

To say that if I am persuaded a thing is wrong I won’t do it, is not true. The mutiny of human nature is that it will do it whether it is wrong or not.

The problem in practical experience is not to know what is right, but to do it. My natural spirit may know a great many things, but I never can be what I know I ought to be until I receive the Life which has life in itself, viz., the Holy Spirit. That is the practical working of the Redemption.

“Morality is altogether based on utilitarian standards”: it is not, a man’s conscience will come in every time when he doesn’t want it to.

Conscience resides in the essential spirit of a man, not in his reasoning faculty; it is the one thing that assists a man in his unregenerate days.

Why are men not worse than they are? The reason is the existence of the moral law of God which restrains men in spite of the impulse towards wrong, consequently you find remnants of the strivings of the moral law where you least expect it because the moral law is independent entirely of the opposition to it on the part of individual men.

When God’s law is presented beware of the proud self-confidence which says, “This is good enough for me, I don’t intend to soar any higher.”

In dealing with the question of disease both moral and physical, we must deal with it in the light of the Redemption. If you want to know how far wrong the world has got you learn it, not in a hospital, but at the Cross. We learn by what it cost God to redeem the world how criminally out of moral order the universe has got.

The guilt abroad to-day can never be dealt with by pressing a social ethic or a moral order, or by an enfolding sympathy for man, while pooh-poohing the demands of a holy God.

Very few of us know what love of God is, we know what love of moral good is, and the curious thing is that that leads us away from God more quickly than does a terror of moral evil; “the good is ever the enemy of the best.”

Our lawlessness can be detected in relation to the words, “Come unto Me.”

Liberty means ability not to violate the law; license means personal insistence on doing what I like.

If a man is not holy, he is immoral, it does not matter how good he seems, immorality is at the basis of the whole thing. It may not show itself as immoral physically, but it will show itself as immoral in the sight of God (see Luke 16:15).

Intellectual scepticism is good, but a man is to blame for moral scepticism. Every man believes in goodness and uprightness and integrity until he perverts his taste by going wrong himself.

Beware of giving way to spiritual ecstasies, it disconnects you from the great ordinances of God and shakes the very basis of sane morality God has made.

There is no such thing as a wrong wrong, only a right that has gone wrong. Every error had its start in a truth, else it would have no power.

In the moral realm if you don’t do things quickly you will never do them. Never postpone a moral decision.

Second thoughts on moral matters are always deflections.

It is only when a moral act is performed and light thrown on realities that we understand the relationship between our human lives and the Cross of Christ.